예수그리스도만이 인류의 구세주

예수그리스도만이 인류의 구세주

한국 감리교 신학대학의 B교수는 지난 6 월 26 일 현대사회연구소가 주최한 「불교와 기독교의 대 화」라는 세미나에서 기독교측 연사로 나서 강연을 통해 디모데전서 2장 4절의「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와 요한 1서 2장 1절에서 2 절까지의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오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니라.」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전 인류에 대한 신의 보편적 구원의 경륜과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편성을 주장 했으니 즉「기독교 밖에서도 구원이 가능하다.」 면서 「교회에 속하지 않은 비기독교인, 무신론자까지라 도 진리와 정의 양심에 따라 살면 익명의 그리스도인으로 보고 구원이 가능하다。」라는 주장을 했다.

아무리 우리의 생활이 바쁘고 고달파도 믿음은 생명과 같기에 구원을 확신하고 영생을 소유한 우리 그리스도인은 시냇물 가에 심은 뿌리 깊은 나무들같이 흔들리지 않고 계속 성장해야 될 줄 안다.

그러나 B교수의 발언을 토대로 하여 항간에 많은 얘기가 오가며 그로 인해 여러 오해가 유발되어 우리의 믿음 성장에 혹시나 저해요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감히 펜을 들었으며 하나님의 생명력 있는 말씀을 근거로 조그마한 믿음을 표현하고자 한다.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40일 금식 기도를 하신 후에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에 성령의 검(성서)을 사용하셨다. 사탄의 도전을 받으실 때마다 「성서에 기록하였으되···……」라고 하나님의 생명력 있는 말씀을 인용하셨을 때 사탄은 패하여 물러 갔었던 것이다.

예수께 서 승천하신 후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예수만이 우리를 구원하는가 ? 다른 방도는 없을까 ?”하면서 문제를 성서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다른데서 해답을 얻으려 하며 많은 논란을 펴 왔다. 기독교는 성경을 신앙의 경전으로 삼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과 뜻을 계시하신 것으로 살았고 운동력이 있으며 말씀 자체가 권능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에 기독교에 관한 모든 주장들은 성경 말씀을 근본으로 이론을 전개하되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스스로 나타내심 (계시)」을 파악해야 한다. 요즈음 일부에서는 방언하고 병 낫고 예언하는 것만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 현상은 각각 성경을 전체로 파악하지 않고 일부분만을 강조한데서 생긴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의 뜻을 파악하며 읽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뜻 깊은 일이며 특히 구약은 신약의 조명으로 신구약성서는 예수를 주제로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성서의 근본의 흐름, 뜻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문제된 B교수의 발언에 관하여 논하는 것을. “신학자로서의 학문적인 소신을 나타낸 것 가지고 너무 따지는 것은 오히려 편협한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냐.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을 보게 된다. 여기 한 가지 예를 들어 마켓에 가서 사과를 고른다고 하자. 사과 종류에 따라서 달고 시큼하고 단단하고 푸석푸석 다르게 마련이다. 또 색 깔도 제각기달라 빨강, 노랑, 파란색···…… 그래서 이름도 각각 다르다. 「국광, 홍옥, 후지, 골덴,스타킹 ·…」 비록 모양이나 맛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이에 개의치 않고 「사과」라고 부른다. 사과가 지닌 일반적인 공통점을 지닐 때 사과라고 부르게 된다. 그렇지만 결코 사과가 아닌 것이 자칭 사과라고 하면서 사과 노룻 하는 것을 사과라고 할 수는 없다. 자두나 토마토를 사과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독특한 풍미에 따라서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성결교 등의 여러 가지로 분류하기도 하나,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구세주」라는 그 근본 흐름이 동일하기에 우리는, 비록 교파가 다른 교회에 다닌다 할지라도, 「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같은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면 성서가 말하는 구원에 대하여 대략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성서는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간은 악하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어 깊은 교제 가운데서 지내시기를 원했으나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사람이 하나님과의 사랑에서 분리가 되어 떨어져 나갔다. 본래 사람은 하나님과 사귀며 살도록 창조 되었으나 사람이 제 마음대로 살려고 했기 때문에 사귐이 끊어지고 말았다.

죄란 무엇일까?

죄란 거짓말하는 것, 도둑질, 남을 해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하여 무관심한 것 바로 이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며 (로마서 3 장23절), 죄의 삯은 사망 (로마서 6 장23절). 즉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가 되어 죽은 후 심판에 이르게 되니 (히브리서 9 장27절). 하나님은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준다고 성서는 분명히 말하고 있다 (데살로니가 후서 1 장7 절 ~ 9 절).

둘째,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과 사귐이 없는 사람은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는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 어두움에 거하는 사람들이 헤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 제단의 제물로서 흠없고 온전한 양과 비둘기를 죽여 , 그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 자신들의 죄를 임시적으로나마 대신했다. 이것은 흠없고 온전한 어린양 예수님의 피로, 인간의 죄를 영원히 씻어 버리기 위하여 오신 것을 미리 보여준 예표이었다.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으니 (로마서 5 장 8 절). 분리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재정립되어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 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사실을 믿을 때 우리의 삶에서 예수를 각자의 구세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아 예수 십자가를 징검다리로 넘어서 하나님께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하니 에베소서2 장 8 절에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였다.

셋째. 오직 예수.

예수만이 구원에 이르는 단 하나의 통과해야 할 문이라고 말씀 하셨으니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 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요한복음 10장 9 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의도적으로 이 문을 회피하여 다른 방법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며 생명의 삶을 얻고자 하지마는 「예수의 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 이외의 「다른 이로서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으며 (사도행전 4 장12절)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6 절) 라고 말씀하셨으니 그를 떠난 자는 구원을 얻치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이 이렇게 밝히 말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유일한 길 이외에 다른 길도 있는 것처럼 마치 천국 가는 많은 길 가운데 그중의 하나로 하나님 말씀을 왜곡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본다.

이 길만이기에.

초대교회 당시 네로황제의 피의 탄압 아래서도 많은 믿음의 성도가 사자 밥이나 화형 대위의 산 제물로 타 올랐으며 가까이는 죽기를 각오하고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옥중에서 투쟁하고 바늘 길 위를 걸어간 주기철 목사님을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 거늘 이 분들이 다른 길을 몰라서.우둔하고 무지해서 목숨을 그리스도께 바쳤을까?

예수만이 길 이다.

그리스도인의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의 진리대로 인도되어져야 한다. 예수님 그 자신이 구원을 이루는 단 하나 뿐인 길이요 진리요,생명인 것이다. 아멘.

 

강기종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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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한마음 제 6호 14페이지에 실렸던 평신도문예 글을 다시 재개한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