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타난 언어의 문제

성경에 나타난 언어의 문제

언어는 인간들이 서로의 의사를 전달(communication) 하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표현 방법이다. 만약 언어가 없었다면 종교도 문화도 없었을 것이오,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 생활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를 가진 인간은 서로 협력하며 일치하여 인간 문명을 이룩하였고, 또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었다는 데서 우리는 얼마나 축복받은 인간임을 생각게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미국에 이민 와서 살면서 이 언어 문제가 우리의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에 상당히 어려운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우리의 2세들에 복음을 전달하는 데는 더욱 곤란한 문제이다.

이번에 “한마음” 집에서는 2중 언어 문제를 다루게 되었으니 최선의 방법을 모색하여 좋은 방법들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이제 성경 상에 나타난 언어 문제를 간단히 고찰하면서 2중 언어 문제도 생각하여 보고자 한다.

 

1. 언어의 혼잡 (창 11: 1~9 )

 

“온 땅의 구음이 하나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창11 : 1 )

지구상의 인간이 시초에는 언어가 하나여서 서로의 의사소통이 쉬웠고 또 일치 협력도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노아의 후손들은 문화를 발달시키고 힘을 뭉쳐서 바벨탑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곧 인간의 힘으로 신에게 도달코자 하는 방자한 생각인 동시에 언어의 일치를 응용하여 인간의 힘으로 신을 대신코자 하는 오만과 방자함이었다. 이를 보신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게 하여 그들의 언어가 불통 되고 의사가 전달될 수 없어서 바벨탑 건축이 와해하게 하셨다고 하였다.

이로부터 인간들 사이에는 언어가 지역에 따라서 민족과 나라로 분열이 되었고 서로 불일치와 불통일이 생기게 되었다.

언어학적으로는 이상한 말 같을지 모르나 이것이 창세기에 나타난 언어의 혼잡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불일치, 불통일을 영원히 방치하지는 않으셨다. 에베소서 1장 10절에 “하늘에 있는 자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함이라” 고 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은 실로 우리 모든 인류를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을 원하신다.

 

2. 언어의 소통 (행 2 : 1 -12)

 

창세기에서 혼잡한 언어가 사도행전 2장에서는 언어가 소통하게 되었다. 그것은 성령의 충만으로 말미암아 생긴 방언에 의하여 나타난 현상이었다,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15개국(혹은 지방)으로부터 모여 온 외국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외국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그들의 출생지의 방언으로 모두 복음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고 하였다. 혼잡하여 서로 알아들을 수 없던 언어가 이제는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소통이 되었다는 것이다. 옛날의 불일치가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되었다는 말이다. 어떤 성서 학자는 당시에 세계에 흩어져 있는 외국 유대인들은 보통 아랍어를 사용할 수 있었고 또 당시의 세계적 언어는 헬라어였으므로 사도들은 아랍어나 헬라어로 설교하였으므로 그들이 다 알아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일리가 있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상일 뿐이다.
행 2 : 7~8을 보면 군중들이 놀라며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었다” 고 하였다. 하여튼 오순절에 각국에서 모여 온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방언으로 복음을 들을 수 있었다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언어의 통일을 본 것이다.

영적 언어의 일치에 의하여 서로 불통이 된 인간들이 참 일치와 통일을 보게 되었다.

오늘도 우리는 국가와 민족 상호 간에 언어가 다르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세계적인 일치와 통일을 하게 된 것이다. 성경 상에 나타난 언어 문제는 구약에서는 혼잡하여 불통이던 것이 신약에서는 일시나마 방언에 의하여 소통하였고 지금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영적 일치와 통일을 하게 된 것을 감사한다.

그런데 오늘 여기 이민 와서 사는 우리들에게도 언어 문제로 적지 않은 어려웅을 겪고 있다.

 

3. 이중언어 문제

 

우리는 미국 속의 소수민족이다. 이른바 Korean American이다. 지금 우리 기성세대 중에는 영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린이와 청소년 중에는 한국어에 어려움을 겪는 자들이 많다. 날이 갈수록 한국말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세대가 점점 더 많아져 가고 있다, 그래서 이 나라 교육 정책 중에는 2중 언어 교육이라는 프로그램이 중요 과제로서 많은 연구와 재정적 뒷받침을 하는 실정이다. 극히 우리 동족끼리만 모이는 교회 안에서도 2중 언어 문제는 가장 어려운 문제로 대두 되어 있다.

교회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국말로 가르칠 것인가, 영어로 가르칠 것인가, 한국말로 예배드릴 것인가, 영어로 예배드릴 것인가? 기성세대들은 “뿌리” 교육을 말하면서 교회에서는 한국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교육 현장에서 일하는 당사자들은 반론을 제기한다. 그 이유로는 주일날 짧은 시간에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말로 설교하고 가르친 대도 그들이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은 언어 문제 이전에 영적 문제에 더 큰 손실이며 또 학생들이 교회학교에 출석할 의욕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하여 짧은 시간 안에 양국 국어를 병행하여 사용하는데도 상당한 애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어로만 사용하면 한국말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오, 또 갖 이민 온 학생들은 이해 못 할 것이오, 한국말로만 하면 이해 못 하는 학생이 많을 것이니 문제이다.

이에 대하여 별로 묘한 방법이 아직 없다. 최선의 방안이 없으니 차선의 방법이라도 찾아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1. 교회학교의 본질적 사명은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달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어떤 언어이든지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어찌 믿을 수 있으리오? ” 고린도전서 14장에 바울 사도는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보다 알아들을 수 있는 예언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하였고, 방언하려거든 통역을 세우라고 하셨다.
  2. 그러나 우리는 민족적 “뿌리” 교육을 하는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문제이다. (뿌리 교육은 언어만이 아니고 역사, 문화 등이 포함된다) 또 학생 중에는 영어를 아직 잘 이해 못 하는 학생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학교에 “한글반”과 “주말학교” 등을 병설하여 한글, 역사, 문화 등을 교육하여야 한다. 그러나 한국어를 배워도 그들이 평소에도 듣고 말할 기회 가 있어야 할 것이다.
  3. 그러므로 교회학교는 학생들의 2중 언어의 실력에 따라서 2중 언어를 적당히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① 예배 시간에 사회자가 하는 말은 가급적 한국어로 쉽게 말하고 설교나 수업은 그들이 쉽게 이해되는 말로 하는 방법 (성경 말씀은 꼭 이해되도록 해야 함). ② 영어, 혹은 한국어로 설교, 혹은 수업하고. 한어, 혹은 영어로 뒤에 간단히 써머라이즈(summarize) 하는 방법. ③ 설교나 수업은 영어로 하고 보통 일상 시의 대화는 가급적 한국어로 하는 등의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런 방법들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2중 언어 문제의 차선의 방법이요, 최선의 방법은 아직 더 연구의 계속이 필요하다. 이번호에 2중 언어 문제에 대하여 좋은 방법과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김계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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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1984년 2월에 발간된 한마음 제 8호 2페이지에 실렸던 2중언어에 관한 커버 스토리글중 당회장의 인삿말을 다시 재개한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