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새시대의 기독 청년상

우리 새시대의 기독 청년상

I. 급변속에 사는 청년

“지저귀는 참새들은 떼를 지어 여행을 한다. 독수리만이 폭풍우를 무릅쓰고 날카로운 번개에 도전하기 위해서 구름과 바위로 된 산봉우리를 높이 솟아 오른다”는 말이 우리 기백이 넘치는 청년은 물론 급변하는 시대에 사는 크리스쳔들에게 시대적인 요청과 크리스쳔의 사명의식을 일깨우는 말로 믿어집니다.

무릇 시대는 변천하고 사회는 달라지는 것이지만, 우리가 처한 시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급격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읍니다. 사회가 변화하면 거기에 따라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도 변화하지 않으면 않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에는 그 사회는 발전하지 못할 것이요, 개인의 생을 성공적으로 영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는 새로운 행동양식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낡은 행동양식에 집착하게 되면 새로운 환경에 그 자신을 적용시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종교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것입니다. 사회가 달라지면 거기에 따라 복음을 전하고 복음의 진리를 실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 할 때에는 우리의 노력은 열매를 거두지 못할 것이요, 교회와 크리스쳔이 하는 일은 “쭈그러진 냄비를 철모로 쓰고 녹슬은 칼을 차고 늙고 말라 빠진 말을 타고 싸움터에 나선 현대판 돈끼호테의 어리석음 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크리스쳔은 새로운 환경과 상황 속에서 복음을 성공적으로 전파하고 복음의 진리를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낼 수 있어야 할 것 입니다. 이렇게 볼 때 새시대가 요구하는 기독청년은 다름이 아니고 새시대의 새로운 상황 속에서 지혜롭게 복음을 전하고 슬기롭게 복음을 실현할 수 있는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갖춘 젊은이라야 할 것입니다.

II. 우리 새시대가 요구하는 기독청년

(1) 실력있는 청년을

급변하는 근대화된 사회에서는 모든 분야가 전문화된 영력으로 분화 독립되게 마련인데 이런 분화 독립의 결과로서 직업이 분화하고 전문직화해 갑니다. 아무리 공학박사라도 시계가 고장나면 자기가 직접 고치는 것이 아니라 시계 수리공한테 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오늘의 사회입니다. 타고난 재능과 수련만 가지고도 안되고 자기가 종사하고 있는 분야에 대한 전문적 기능이 있어야 하고 상식만 가지고도 안되고 전문적인 체계적 지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 전문직화된 사회에 있어의 특징이다. 법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법관이 될 수 있고 교육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있어야 교육자가 될 수 있읍니다. 기술이 요구되는 사회에 있어서는 기술이 없는 인간은 무능한 인간이요, 무용지물의 인간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용모가 아름답고 예의가 밝고 행동이 세련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타이프를 익숙하게 칠 수 있어야 타이피스트로 채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마음이 선하고 정의감이 강할지라도 법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가지지 못하면 훌륭한 법관이 될 수 없고 아무리 사랑과 성의가 있지만 교육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은 바른 교육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각분야에서 여기에 대하여 깊이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전문지식과 기능을 가진 사람이라야 자기 맡은 분야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지 않기 때문에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지 못하고 정실인사에 흐르게 되며,그 결과 교계와 많은 기관이 제대로 능률을 올리지 못하고 사회에 뒤떨어지게 됩니다. 크리스쳔의 사업은 더욱 번창하고 교계(교회)의 각기관은 더욱 능률을 올려서 그것을 보고 세상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할 것 입니다. 한 예로서는 뒤떨어진 사고방식 중의 하나는 유명한 사람은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생각과 처사라 할 수 없을 것 입니다.

(2) 사회의식이 있는 청년을

기독교 신앙은 하늘나라의 영원한 진리를 강조하기 때문에 흔히 절대주의에 떨어져서 변화하는 현실의 상대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향배(向背)하고 무관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종교인이라고 해서 현실에 무관심해서 좋다는 법은 없읍니다. 아니 종교인일수록 현실에 대해서 책임성있는 관심을 가져야하며 민감한 사회의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늘나라와 영원한 세계로 도피를 꾀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배하고 하나님을 반역한 죄 많은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세상에 오셔서 세상 한가운데서 구원의 사업을 하신 것 같이 크리스쳔도 하늘나라를 땅에 이루워지게 하고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대하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입니다.

즉 사회를 알지 못하는 점성가의 말은 사회에 대해서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할 것 입니다. 사회에 어두운 종교가의 설교는 현실과 아무런 관련성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허공을 찌르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을 것 입니다.

(3) 창조적 정신이 있는 청년들

새시대의 기독청년은 활발한 창조적 정신을 가진 청년이라야 하겠읍니다. 앞서 우리는 새시대의 기독청년은 민감한 사회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하였읍니다. 그것은 새시대의 요청에 응해서 창조적으로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시대에 있어서 복음이 전해진 방법이나 복음의 진리가 실현된 형식을 맹목적으로 고수하거나 그것에 대해서 사로 잡힐 것이 아니라 새시대 속에서 슬기롭고,지혜롭게 복음이 전해지고 복음의 진리가 실현될 수 있는 방법을 창의성 있게 발견하지 못하고 지난날의 낡은 방법과 형식에만 집착할 때 우리는 법률을 가지고 율법의 근거인 사랑을 죽여 버린 바리새인들의 선패를 되풀이하는 어리석음을 면치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기독교는 인생의 대열의 뒤를 따라가면서 인생의 낙오자를 구출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앰부런스(구급차)종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질서의 낡은 세계 속에 새로운 사랑의 세계를 선포하셨읍니다. 다시 말해서 낡은 세계를 물리치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읍니다. 기독청년은 결코 시대에 뒤떨어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고 시대의 정도를 간파하여 새시대의 도래를 선동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역사를 통해서 항상 새롭게 자기를 드러내시는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에 있어서도 백년전 또 천년전과 꼭 같은 방법으로 자기를 드러내신다면 그것은 이미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기 때문에 영원히 항상 새롭게 자기를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만유중에서 오직 인간에게만 그의 형상을 허락하시어 인간으로 하여금 그의 자유에 의해서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는 특권과 영광을 누리게 하셨읍니다. 지난날의 낡은 역사에만 집착하여 오늘의 역사적 현실을 통해서 드러내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외면하는 것은 바른 신앙의 자세라고 할 수 없읍니다. 참된 신앙은 주어진 현실의 상항과의 연관에 있어서 복음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이해하고 바른 사회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전하고 실현할 수 있고 창조적 신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4) 신앙이 있는 청년을

크리스쳔이 신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는 것 그 자체부터가 좀 이상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실정은 이것을 새삼 강조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있읍니다. 독일의 철학자 ” 니체 ”는 “인간적으로 너무나 인간적으로”라는 책을 쓴 일이 있읍니다. 니체의 이러한 말투를 빌린다면 오늘날 청년들은 “떨어진 너무나 떨어진” 상태에 있으며 “내려온 너무나 내려온” 상태에 있읍니다. 인생을 즐기고, 향락을 추구하는데만 몰두하여 시혼(詩魂)이 말라 버리고 말았읍니다. 실증주의와 실용주의 사고에 사로 잡혀서 생의 이념을 망각해 버리고 말았읍니다. 영국의 유명한 사상가 토마스 카라일은 공리주의 철학을 돼지 철학이라고 악평했고 공리주의 철학은 우주를 돼물통으로 화하는 철학이라고 한 바 있읍니다. 다시 말해서 공리주의가 생의 최고의 원리가 되고 이념이 되어 버리고 말면 우리의 혼이 타락하고 정신이 저속하게 되어서 공리적도 못되고 이기적이 되고 향락주의가 될 우려가 없지 않읍니다. 이것은 실용주의와 실증주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실용주의는 실리주의로 전락해서 이해 타산에만 밝은 인간을 만들었고 실용주의는 인간을 유물주의에 전락케해서 먹고 입고 자는 것이 전부인 한낱 동물의 존재로 만들고 있읍니다. 이러한 풍조는 인간을 생의 원리도 없고 이념도 없이 순간적 쾌락과 일시적 향락을 위해서 사는 유물적 속물주의에 떨어지고 말게 할 것입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사회와 국가의 앞날의 운명을 위협하는 것일 것 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바울의 말대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서 악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더욱 강하게 끌리기 때문에 이해 타산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말을 끝맺음에 기독청년은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풍부한 지식도 뛰어난 기능도 그것을 가진 사람의 마음이 선하고 올바른 생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때문에 크리스쳔 젊은이들은 지식과 기능에 있어서 앞서고 우수해야 하지만 그것을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고 따라서 이웃을 위해서 선용할 수 있는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 매혹된 사람 진리에 미친 사람입니다. 즉 그리스도에 매혹되어서 그리스도와 같이 살겠다는 감격스러운 결단 때문에 뻔히 알면서도 진리와 옳은것을 위해서 손해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의 선으로서 악을 이길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는 계산과 타산을 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계산을 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진리와 정의에 신앙을 생의 동력으로 하고 현대의 지식과 기능을 기관으로 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지상에 실현하고 확대하려는 일군 이것이 곧 우리 새시대의 기독청년의 바람직한 모습이겠읍니다.

 

교구 목사 : 송천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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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1982년 3월에 발간된 한마음 제 4호의 12페이지에 실렸던 글을 다시 재개한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