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범한 여름날의 일상 / 행복은 멀리 있지않아

어느 평범한 여름날의 일상 / 행복은 멀리 있지않아

“여보세요? 00 씨 되시나요? 지난번 검사하신 결과가 나왔는데요….”  어느 평범한 오후 사무실에서 한통의 전화가 울려왔고, 덤덤하게 전화를 받던 내게 청쳔벽력 같던 소식이 전해졌다.

 

“코로나 검사 결과 양성입니다.”

 

“네?

 

“혹시 어디서 감염되었는지 기억나세요?”

 

“전혀….”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었다. 2020년 3월 중순부터 갑자기 늘어난 코비드-19 환자 소식에, 일찍이 직장에서는 재택근무제를 선택했고, 나 역시 4월 초부터 일주일에 절반만 회사에 근무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아 조심스레 근무를 시작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날 꺼라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코비드-19 환자는 증가하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의 이야기 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미 직장 안에서도 몇 명의 코비드-19 환자와 접촉한 직원들은 있었지만, 다행히 결과는 모두 음성이 었기에 딱히 내가 걸렸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하늘이 노래졌다. 게다가 지금 이 결과를 받은 곳이 사무실이라니..

 

부랴 부랴 짐을 싸면서, 직원들과 상사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조퇴를 서둘렀다. 다들 나 때문에 비상이 될 사무실과, 가족들에게 내가 양성이라는 소식을 전한다는 것이 너무도 마음이 착잡하고 무거웠다.

 

Corona, World, Mask, Virus, Disease

 

– 왜? 도대체 왜?

 

– 어디서 걸린 거지?

 

– 아니 그보다도, 나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집에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 나 코로나래”

 

“뭐라고?”

 

“나 이제 어떡해?”

 

사실 병원에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 난 아무런 증상도 없었다. 무슨 증상이라도 있었다면, 사무실 근무라도 안 했을 텐데..

 

일주일 전 직장 내 첫번째 확진자가 나왔었다.  평소 잦은 감기 때문에 사무실을 거의 못 나오던 직원이었고, 혹시나 몰라 한 검사에서 확진을 받아 자가격리 중인 상태였다. 이미 직장 분위기는 첫번째 감염 사례 때문에 패닉이 되어 있었고, 곧바로 모든 직원들에게 코로나 검사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또한 코비드-19 테스트 킷 (항체 테스트)을 구매해서 확진 판정을 받은 직원과 근접한 곳에서 일을 했던 직원들이나, 원하는 모든 직원들에게 검사를 실시했었다. 다행히도 항체 테스트 결과는  전원 음성. 나 역시 그 당시 음성 판정을 받았었기에 코로 하는 바이러스 테스트는 그저 회사의 권고 사항일 뿐이었다.

 

그저 회사의 지시 사항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받았던 검사 결과가 “양성”이라니… 이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옆에서 점심시간에 밥을 같이 먹었던 직원 조차도 음성 판정이 나왔다는데 대체 내가 왜???

 

무섭고 또 겁이 났다. 무증상 감염자가 그렇게 많다더니.. 내가 그럼 무증상 감염자 였던 걸까?

 

수만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앞으로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그 보다도 이제 만 4살이 된 딸은 어떻게 되는 거지? 자가 격리를 하라는데 어린 딸이 엄마가 앞으로 몇 주간 안아줄 수도 옆에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도 없다는 걸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게 난 하루아침에 달라진 세상과 마주 할 수 있었다. 어떠한 경고도 사전 예고도 없이 그렇게 나의 일상은 하루아침에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격리 기간 중 내가 가장 무서웠던 것은 바로 “주변의 시선”이었다. 순간 공공의 적이 된 것 같은 차가운 시선. 많은 사람들이 나의 건강과 가족의 건강을 걱정해 주었지만, 어떤 이들은 나와의 접촉점, 시간 장소들을 캐물으며 경계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증상 감염자라는 사실이 그들의 두려움을 자극했을지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퍼져가는 근거 없는 루머들과 철저하게 나를 경계하고 고립시키는 시선은 너무도 차갑고 두려웠다.

 

두 번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병원에서 확진을 받고, 걱정되는 마음에 확진 판정을 내린 병원에 연락을 해서 물어보았다.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햐냐고.. 돌아오는 답은 간단명료했다. “아무것도 하실 것이 없습니다.” 이 말만큼 나를 황당하게 하고 가슴이 무너지게 한 말이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매일매일 몸 상태를 확인하고, 호흡곤란이나 열이 수일간 지속되거나, 산소포화도 수치가 90 아래로 내려가면 이머전시로 가라는 것 외에는 어떠한 치료 방법도 없다는 것.  병에 걸렸는데, 치료 방법이 없어 약도 없고, 아파도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병원에 갈 수가 없단다.  게다가 전염성이 높으니 한 집에서도 가족들과 같은 공간에 있지 말고, 식사도 따로 하고, 집안에서조차 마스크를 24시간 끼고 있어야 하는 것이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세 번째는 예측 불가능한 건강상태와 마음의 동요였다. 코비드-19  확진을 받았던 당일, 난 가벼운 목감기 증상만 있을 뿐 눈에 띄는 증상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false positive 가 아닌가 의심할 만큼 멀쩡한 몸 상태였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것일까? 마음의 병이 더 무서운 것일까? 매일매일 건강 상태는 조금씩 좋았다 나빴다는 반복 했다. 이게 코비드-19의 증상인지 아님 그저 마음의 병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하루하루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며 내 일상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너무 멀쩡하게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했는데 오후쯤에는 급격히 오한이 오거나, 극심한 두통, 감기 기운과 동시에 기분도 수도 없이 바뀌었다. 기뻤다 우울해졌다 무기력해졌다 수도 없이 변하는 마음의 동요.  확진 판정 후 3일째 되는 날은 자다가 몇 번이나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공포를 느껴 밤을 설치기도 했다.  이러다가 죽는 것은 아닐까.. 그럼 남겨진 가족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부터 이 상황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기도 하고 그렇게 악순환이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격리 중 꼭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Flower, Life, Crack, Desert, Drought

 

어려운 시기에 내가 버틸 수 있게 해 준 많은 도움의 손길, 온정의 나눔, 그리고 가족의 존재에 또 한 번 감사하고 감사했다. 확진 판정 소식에 집 밖에 못나게 되었을 때, 음식을 집으로 투고해 주는 분들, 그로서리를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보내준 분들, 매일매일 문자와 전화로 내 안부를 물어봐 주고 기도해 주는 많은 사람들의 손길은 나를 어려운 상황 속에서 버틸 수 있게 해 준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또 내가 참 사랑을 받고 있구나, 다 같이 나의 아픔을 함께 공유해 주는구나 하는 따뜻한 온정에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내가 확진을 받기 한 달 전, 학교가 클로즈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집안에서 생활하게 된 딸도 내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 속의 세상 속에서 여기도 가고 싶고 저기도 가고 싶다 칭얼대던 딸도 매일 같이 엄마랑 함께 있어 행복하다며, 내가 안아주지 못하고 함께 식사를 하지도 함께 잠자리에 들지 못해도 세상에서 젤 좋은 우리 엄마라고, 내가 우울할 틈 없이 크고 작은 일상을 함께 해주었다. 어느 날 내가 너무 힘들어서 제발 혼자 밤에 잠잘 수 없겠냐고 큰 소리를 낸 적이 있었다. 그때 딸아이가 “엄마, 옆에서 자고 싶다. 그냥 나도 같이 아파서 엄마 옆에서 그냥 잘 수 있음 좋겠다.” 하는 말에 울컥 터져버렸다. 그때 깨달은 작은 사실은 어떠한 질병도 어떠한 상황도 사랑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어린 딸의 입에서 엄마 대신 아파주고 같이 아프면서 엄마 옆에 있고 싶다는 말을 들으며 또다시 깨닫는 소소한 행복 그리고 묵묵히 아무 말 없이 모든 내 수발을 들어준 남편에게도…

 

또한 제2의 확진자가 나오지 않은 사실이었다. 사실 제일 큰 걱정은 아무래도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가 확진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집단감염, 가족 간 전염, 무증상 확진자의 잠복기와 감염 매개체 등의 뉴스들은 날 두렵게 만들었던 사실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또한 지켜주셨다. 하나 둘 직장 동료 분들이 문자가 와서 음성이다 알려주는 것, 나랑 접촉했던 모두가 음성이라고 알려주었을 때, 어린 딸과 남편 모두 음성 판정을 받던 날, 하나님께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모두 보호해 주신다는 강력한 능력을 경험했다. 행여나 나로 인해 누군가 힘들어지지 않을까 했던 생각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감사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렇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 가족의 어려움을 하나님만의 방법으로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주셨다. 왜 나인가? 왜 하필 나인가? 우울해하며 힘들어하던 시간 속에서, 철저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닥을 경험하고, 하루에도 수도 없이 변하는 건강과 감정의 변화에 지쳐갈 때, 하나님께서는 홀로 날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주변의 따뜻한 이웃들과, 사랑하는 가족들을 내 곁에 두시고 나를 끝없이 위로하고 사랑해 주셨다,  또한 절박함 속에 기도와 찬양으로 위로를 받게 하셨고, 그 가운데서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하셨다. 또 내 주변의 모두를 바이러스로부터 보호해 주셨다. 격가 기간 동안 잠깐 멈춤? 쉼? 을 통해 이제까지 항상 함께해서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내 일상에 감사함과 소소한 행복을 깨닫게 해주는 그런 소중한 시간들이 었던 것 같다.

 

자가 격리 2주가 끝나고, (다행히 경미한 증상으로 14일을 보냈다.) 처음으로 가족 외출을 나선 그 어느 여름날 (딸아이는 거의 한 달 만의 집 밖 외출이었다),  어느 한적한 공원에서 남편과 신나 뛰노는 딸아이를 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완전히 변해버린 세상이지만,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음에,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즐길 수 있음에 푸른 하늘, 반짝이는 호수, 여유롭게 헤엄치는 오리들, 이름 모를 새들, 햇살에 반짝이는 나무들,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풀들과 꽃들 이 모든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예전 같으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그저 그런 흔한 어느 일상에 나는 또 감사하고 감사함을 느꼈다. 코로나라는 어려운 시간 속에서 마치 자연은 잘 이겨내 주어 고맙다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슬쩍 핸드폰을 꺼내, 그저 그런 평범한 여름날의 오후를 찍는다. 아빠와 함께 손잡고 오리에게 밥을 주고 신나 뛰놀며 아무것도 아닌 일에 기뻐하는 딸을 보며 다시 한번 느꼈다. 행복? 그것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내 옆에 항상 있었다는 걸. 다만 내가 느끼지 못했을 뿐…  하나님은 그렇게 나의 하루를 그렇게 특별하게 만들어 가고 계셨다.

 

Father, Daughter, Family, Playing, Happy

 

정확하게 한 달 반의 시간이 흐른 후 두 번의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아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게 된 나는 그렇게 오늘의 하루에 또 감사하고 감사하며 하루를 보낸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소중한 시간들을 감사히 여기며..

 

 

정진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