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입니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주일 아침마다 부지런히 준비하고 바쁜 걸음으로 모여든 2부 찬양대원들이 찬양대실에서 연습을 시작하며 불렀던 찬양이다.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을 크게 뜨고 잠자는 우리 육체를 깨우고, 또 잠자고 있는 영혼을 흔들어 깨우며 나에게 명령하며 부르는 것이다.  깨어 일어나라고…, 내 속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하라고…,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그분께 어서 나아가라고…, 이전까지는 이 찬양을 거의 발성 연습을 위해 불렀던 적도 있었다.  연습을 해야 하니까 당연히 목을 풀고 연습을 효율적으로 하고 싶어서 연습곡 차원에서 곡을 불렀던 적도 있었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전부로 여겼던 어린 지휘자였던 나는 당연하게 여기며 불렀던 것 같다.  꽤 오랜 시간 지휘자로 있으면서 나는 어린 모습 그대로 그렇게 지휘를 했던 것 같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생각대로 찬양대를 더 훌륭한 음색과 멋진 하모니를 가지고 있는 찬양대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었다.  열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젊고 뜨거웠기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내 안에서는 많은 판단과 비판들이 쏟아졌었다.  나 조차도 해낼 수 없는 어떤 영역들에 잣대를 들이대며 마치 나의 평가와 비평들이 정확하고 확실하다며 남의 찬양을, 음악을 마음껏 도마 위에 올려놓았었다.  찬양의 중심을 보는 게 아니라, 음 하나하나를 다 쪼개어 비판하고 분석했던 어린 지휘자로 살아가던 어느 날, 예수님의 만지심을 느끼고 내 눈이 떠졌다.  내가 이제껏 눈을 감고 살아왔던 게 아닌데 눈이 떠졌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냥 모든 게 달랐다.  그냥 잠도 안 자고 눈이 떠져서, 그냥 새벽예배를 가기 시작하고, 그냥 기도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전까지 알던 예수님이 동일한데, 분명 뭔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고 뭔가 기뻤다.  좀 부족해도 좀 음이 떨어져도 나쁘지 않았다.  이전에 나를 힘들게 하던 부분들이 나를 더는 힘들게 하지 않고 오히려 은혜로 바뀌었다.  그냥 팔만 흔들고 음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던 지휘자가 아니고, 찬양대원 한분 한분을 보게 되었다.  함께 삶을 나누고 싶게 되었고 믿음의 동역자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함께 성장해 가길 원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이 있기에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함은 당연히 따라와야 하는 부분이다.  열심히 연습하고 잘 관리해서 더 아름다운 찬양을 드려야 함은 당연한 것이다.

Music, Trumpet, Light Effects, 3D

찬양의 훈련과 중요성은 성경에 잘 나와 있다. 구약시대에 다윗이 교회음악인 288명을 선정해서 특별히 훈련시켰을 뿐 아니라, 사천 명의 레위사람들을 뽑아서 찬양대로 삼고, 128명의 나팔 부는 사람들을 세웠다는 기록처럼 다윗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성전이 건축된 솔로몬 시대에 악기하는 자와 찬양하는 자를 훈련시키고, 성전예배로 찬양이 더 많은 발전을 보여준 것은 구약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다. 신약시대에 오면서는 찬양대에 대한 특별한 기록은 나와 있지 않지만, 찬양이 더 대중적으로 전파는 되면서도, 초대교회 시대의 박해로 말미암아 많이 발전된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그 후로 교회의 국교화와 더불어 찬양대는 여러 모습으로 발전되어 가고, 천주교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우게 된다.  라틴어로만 부르던 찬양이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자국어로 번역되면서 자유롭게 찬양을 부르게 되었고, 찬양대가 만들어지면서 자원하는 자들과 은사를 가진 자들이 헌신하게 되었다.  현대에는 찬양팀들이 친양대를 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교회들도 있다.  이렇듯 찬양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됐다.  우리는 하나님이 찬양받으시기 위해 지어진 목적대로 찬양을 온전히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몸도 마음도 아름다운 목소리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울리는 꽹과리가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로….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4:23-24)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예배자를 언급하신다.  예배자라 함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한다.

“하나님과 밀접한 사귐이 있는 사람, 하나님의 인격과 깊이 닿아 있는 사람, 삶으로 예배하며 그 속에 잠겨 사는 사람, 그래서 그 삶이 풍성하고 하나님의 빛을 반사하는 사람, 치우친 형식과 외형보다는 관계와 생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가진 달란트와 은사를 자랑하기보다는 주신 분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늘 ‘예’라고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늘 그분 안에 거하기 때문에 쉽게 응답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성령 안에서 예배하기를 훈련하고 연습하는 사람, 진리 안에서 예배하기를 훈련하고 연습하는 사람, 모든 결정권을 하나님께 맡기고 잠잠히 귀를 열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 그 결정에 순종하며 땀으로 헌신하는 사람, 사람과 상황에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사람, 그러므로 자기의 허물과 약함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사람, 되어가는 상황이 조금 느려 보여도 느린 상황보다 하나님 시간에 더 집중하는 사람” (찬양대를 위한 예배 메시지 중에서)

위와 같은 많은 예배자의 조건들이 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길이지만 우리는 그분을 알아가며 그분의 뜻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찬양하고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개개인의 예배자로서 있는 것이다.

나는 항상 찬양대원들에게 이야기한다.  찬양대원들은 두 눈을 다 악보에 고정하면 안 되고 한 눈은 악보를 보고 다른 한 눈은 지휘자를 봐야한다고, 찬양대원들은 그 기술을 꼭 익혀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꼭 필요한 기술(?)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처럼 하나님께서 두 눈을 주신 이유를, 더 큰 의미로 말씀하신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던 적이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두 눈을 가지고도 외눈박이처럼 살지 말고,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발버둥 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한 눈은 현시대를 직시하며 살고, 다른 한 눈으로는 과거와 미래를 통찰하면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예배자가 살아가야 할 삶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삶이 더 멀리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이루며 살아가는 삶을 꿈꾸며,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환경이나 상황, 조건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어려울수록 더 빛을 발하는 예배자들이 모여서 드리는 예배,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그런 예배…, 코로나로 보이지 않는 미래를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두 눈을 가진 예배자들이 영락에서부터 샘솟듯 터져 나오기를 기대하며 소망한다.

 

참고문헌 및 영상: 찬양대를 위한 예배 메시지(조성환), 교회음악론(김철륜), 잘 믿고 잘 사는 법(이재철/유튜브채널)

 

김지은 (2부 찬양대 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