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복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이 복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노니

본문: 로마서 1:16, 17

복음이 무엇입니까? 너무나도 간단하면서도 많은 사 람을 당황케 하는 질문입니다. 복음은 쉽게 얘기해서 “복된 소리” 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부터 이 복된 소 리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1장 1절에 보니 하나님 의 복음이라고 말하며 이를 위해 자신이 부르심을 입었 다고 말합니다. 1장 9절에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의 복음이라고 하며 자신이 이 복음전파에 하나님께서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장 15절에는 바울이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이 복음을 전하기를 원한다고 그의 간절한 염원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는 본문은 우리에게 3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첫째는 이러한 복음에 대한 바울의 자세입니다.
둘째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셋째는 복음의 비결입니다.

 

1. 복음의 자세 (1:16a)

사도 바울은 이 복음에 대하여 “부끄러워하지 아니하 노니”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사도 바울은 이 복음에 대 해 부끄럽게 생각할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는 도덕적으로 심히 문란하고 부패된 나라였 습니다. 도덕적으로 심히 방탕하고 또 그것이 당연스럽 게 받아들여졌던 그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복음의 순수 성과 도덕성은 환영받지 못한 반대와 공격의 대상이었 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은 마치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듯 한 아픔과 댓가가 따르는 진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 복음은 그 당시 로마사람들에게는 말도 되지 않는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렸던 것입니다. 로마인도 아닌, 그 지배아래 있는 히브리인으로 자기들 손에 죽은 예수가 곧 메시야요, 구세주라는 것은 참으로 전파하기 어려운 진리였습니다. 미치광이란 말을 들을 수도 있고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사도 바울은 이 복음전파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이 복음을 부끄러워 하 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바울은 지금까지 이 복음을 전하면서 숱한 반대와 공격과 거부를 경험하지 아니했습니까? 심지어 는 도시전체가 바울에게 등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로 마에서 그것을 바울이 왜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왜 사람들이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 울은 “복음전하기를 원한다”라고 선언하며 복음을 부끄 럽게 생각지 아니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 복음에 대한 자세는 어떠합니까?

바울과 같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는 강한 열정이 있습니까?

‘예수’라는 이름을 꺼내기 어려운 상태에도 그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아니면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생각이 여 러분의 두려움을 자극하십니까?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공산국가나 모슬렘국가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 자들입니다. 그것이 곧 죽음과 희생을 요구해도 그들은 이 복음을 부끄럽게 생각지 아니했습니다. 참으로 귀한 믿음입니 다. 어떻게 이들이 이토록 복음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가 지고 있습니까?

왜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까?

그 이유는 복음의 능력 때문입니다.

 

2. 복음의 능력 (1:16b)

사도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 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능력 (dunamis)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 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만이 구원하실 수 있고 하나님만 이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능력입니다. 복음에 는 이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이 모든 믿는 자들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나 차별이 없습니다. 나이나 학식이나 경험에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민 족과 인종관계가 없습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이 구원 의 능력이 역사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선교의 강한 원동력이 됩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이 있다. 면 우리는 이들에게 이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을 얻도 록 할 책임이 있습니다. 로마서 10장 14절에는 듣지 못한 이가 어찌 믿을 수 있냐고 반문하시며 예수 그리 스도를 전해야 될 사명을 강조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은 우리의 구원으로 제한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이 복음은 증거되어져야만 하고 전달되어져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에는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우리 주위에 주님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 니다. 영적으로 장님이 된 그들, 마음에 근심과 고통으 로 괴로와하는 그들,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영생의 기 쁨을 알아야 될 그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곧 이 “복음” 이라는 확신이 있습니까?

이 하나님의 복음이야말로 그들의 문제의 해결이라고 믿고 계십니까?

우리 예수님께서 그들의 죄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신 것과 그들이 그것을 믿기만 하면 그들의 삶이 변화할 것을 믿으십니까?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 니다. 우리는 이 복음의 능력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 다.

왜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의 능력에 확고한 믿음이 있었 습니까?

어떻게 이 복음이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할 능 력이 있습니까?

그 이유는 복음의 비결 때문입니다.

 

3. 복음의 비결 (1:17)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이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있어 믿음으로 이루게 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의가 필 요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의로 우리를 구원 할 수 없다고 가르치십니다. 우리 인간은 완전하지 못 합니다. 그래서 완전하신 하나님은 이 죄악 가운데 있 는 불완전한 인간을 하나님의 의로 완전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 사(갈 3장)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 나님의 의가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희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가지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 일은 이미 우 리를 위해 이루어졌지만 우리가 이것을 믿지 않는다면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이미 준비된 이 귀한 선물을 받지 아니한다면 이것은 영원히 우리의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이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까?

본문 말씀은 “믿음”으로 받는다고 가르치십니다. 즉 죄인인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죄때문에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 가에 돌아가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의 의가 우리의 의가 되어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도 계속 그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 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2:28)

여러분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 중에 아직도 하나님의 의에 들지 못한 분이 있으면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분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시 기 바랍니다. |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 리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의 · 선물을 이미 받으신 분들은 이 선물에 깊이 감사하십시다. 감당치 못하는 선물입니다. 받을 자격이 전혀없는데 주셨 습니다. 이 감사가 여러분의 헌신과 희생이 되시기를 기도 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 선물이 모든 자에게 준비되 었습니다. 그들에게 이 기쁜 소식(복음)을 전해야 하겠습 니다. 이것이 복음의 비결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사도 바울은 이 복음의 비결을 알고 이 복음의 능 력을 믿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거듭 외칩니다. “내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로마에 있는 너희 에게 이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노라”

여러분은 이 복음의 비결을 확실히 알고 감사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이 복음의 능력을 확실히 믿고 승리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이 복음의 바른 자세를 가지고 전하는 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 “내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진재혁 목사

 

한마음 48호 (1993년) 25페이지에 실렸던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