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을 맞이한 아들의 모습
아들을 하늘나라로 떠나 보낸지 두돐이 넘었고 몇시간후 밝는 아침이면 세번째 맞는 생일이 된다. 벌써 두돐이 넘었나 하며 새삼 놀랍다가는 아니야 내 아들은 꼭 돌아올꺼야. 아마 지금쯤 오고 있을지도 몰라 하는 막연한 생각 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왔던 지루하고 긴 시간들….
라디오 뉴스를 듣고 TV를 보면서 “이제는 로드니킹의 문제가 아니야 바로 우리 Korea Towm이 더 큰 문제야 바로 우리가 모두 나서야 돼 지켜야 돼” 하며 무섭게 분 노했던 아들의 모습, 아직도 어리게만 보여졌던 아들을 나는 조용히 달랠 수밖에 없었고 조금은 가라앉은 듯 문턱에 기대어 천정만을 바라보며 힘없이 앉아있던 그 모습 이 아들이 나에게 보여주었던 마지막 모습이었다.
캄캄한 밤이면 혹시나 하며 조심스레 방문을 열 고 가만히 침대 위를 더듬어 만져보곤 하지만… 손끝에서부터 떨려와 내 육신을 주저앉게 만든다. 무엇하나 제자리를 떠난 것이 없는데… 모든 것 이 그대로인데… 왜 너만이 빈자리를 만들어 놓고 어디에 갔단 말이냐.
남들 앞에선 눈물 보이기 싫어, 아니 아들 잃은 어미가 되기 싫어 태연하게 예전처럼 하려 애쓰나 누가 나의 속마음을 알 수 있을까. 그러나 어젯 밤 꿈속에서 잊지않고 찾아온 아들의 모습에 얼마 나 기뻤는지 알 수가 없다.
국민학교 때의 천진하고 명랑한 모습이 꽤 기분 좋은 모습이었다. 재성이가 밖에서 놀고 있는 사이 제니와 나는 생일을 맞는 아들의 방에다 예쁘 게 색종이로 장식을 했고 재성이가 좋아하는 Gummy Bear도 대롱 대롱 달아 놓았다. 밖에서 뛰놀다 들어온 재성이는 “우와”하며 두손을 높이 들어 껑충뛰며 좋아했고 우리는 손뼉을 치며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생전에 우리 가족이 보냈었던 그대로의 모습이었고 행동이었다.
꿈을 깨고 나니 허무하기도 했지만 생일 날에 맞추어 내게 보내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며 기도드렸다. 한숨과 눈물로, 보내왔던 2년여의 아픈 세월이 한순간에 잊혀지는 듯한 가슴뿌듯한 순간이었다. 눈물은 마음 깊숙히 쌓인 고통을 씻어 치료하는 양약이라 했던가… 지난 며칠전엔 한없이 한없이 운날도 있었다. 차를 몰고 큰길가로 나가 빨간 신호등에 차를 멈춘후 무심코 거울을 본 순간 뒤에 보이는 흰색깔의 차에 바로 아들 재성이가 앉아 있는 것이다. 온 몸에 전류가 감전된듯 움직일 수 가 없었다. 요란한 크렛숀 소리에 깜짝 놀라보니 옆의 차들이 앞으로 질주한다. 어떻게 내차를 몰아 옆으로 세웠는지 나의 온 몸은 땀에 젖었고 춥기까지 한듯 하다. 그러나 하얀색의 뒷차는 나와는 아랑곳 없는듯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나의 시야에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눈처럼 하얀 빛깔의 그차를 쫓아가보지도 못하고 차를 되돌려 집으로 돌아와 목놓아 울었었다.
무심한 녀석… 분명히 재성이었는데… 상큼하 게 깍여진 머리며 작고 오똑한 콧날, 듬성 듬성 푸 르른 여드름 자국 위에 안경낀 모습… 어디로 간 것일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나를 위로하고자 말한다. “이제 세월이 갔으니 많이 나아졌지요. 좋은 곳으로 갔으니 이젠 잊으세요. 그래도 얼마나 영광스런 죽음이예요”라고…
그래 세월아 빨리 가다오. 아들의 생각이 없어 질 때까지, 그 모습 잊혀지기까지 세월아 빨리 가 보렴. 정말 세월가면 잊혀질까. 아니 잊고 살 수 있을까 잊어도 되는 걸까… 생각하기 싫은 그날 그밤이다. 정말 잊어야할 그밤이다. 캄캄한 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있던 아들의 마지막 모습, 어미가 되어서 마지막 가는 길도 배웅해 주지 못한 비정한 엄마. 죄책감에 새삼 몸이 떨려온다. 찬바닥에 등어리는 얼마나 차가왔을까… 목은 얼마나 말 랐을까… 무슨 생각하며 그 시간을 넘기며 떠 나갔을까. 도리질을 해본들 되살아나는 기억 은 막을 수가 없다.
인간이면 누구나 언젠가는 가고마는 인생길. 누구때문에, 누굴 위해서, 무엇때문에 죽임을 당해야 했는지… 처음으로 입밖으로 뱉어보는 아들을 대신하는 호소이다. 황당한 죽음을 당 하고도 또 다른 방법의 죽음을 맞이해야하는 슬픔, 분노, 좌절. 한번으로 족한 죽음을 내아들 은 육신이 눈을 감은 후에도 여 러 사람을 통하 여 또 다른 죽 음을 또 다른 방법으로 맞이 해야 했다. 우 리 인생은 살아가면서 끊임없 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거나 혹은 상처를 입 히면서 살아간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아들 앞에서 부모로서, 어미 로서 감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아니 기성 세대 로서의 슬픔을 좌절을,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상황들을 보고 아들은 과연 무엇이라 답할까..
요즈음 부쩍 찾는 아들의 무덤, 미안해서 찾아 보고, 울적해서 찾아보고, 서글퍼서, 울고파서, 보고파서 찾아가는 나의 아들… 늘 반겨주는 듯 한 무언의 대화가 오고가면 나는 착잡한 심경으 로 마음을 가라 앉힐 수 있어 그곳이 좋다. 부모 가 죽으면 산에 묻고 남편이 죽으 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 에 묻는다고 했던가. 분명히 땅에 묻은 내 아들이 오늘도 나의 작은 가슴에서 무겁게 그리고 아프게 나 를 짓누른다. 쉽사리 무겁고 아픈 가슴이 지워지진 않겠지만 그것이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라면 감사하게 받아들이면서 앞으로의 나의 삶에, 생활에 교만치 말고 어 렵고 험한 세상에 물들어지지 말고 아픈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겸손 한 생활로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라고 하시는 것으로 믿고 순종할 따름이다.
이제 아들없이 맞이하는 세번째 생일 맞는 아침, 아들의 무덤앞에 꽂아놓을 21송이의 붉은 장미꽃 과 예쁜꽃으로 장식한 십자가와 사랑의 표시를 맞물려 만든 생일꽃 선물이 네 몸위에 덮어질 때 에 너를 기억하는, 우리가족을 아는 모든 이들에 게 따뜻한 사랑이 고루고루 퍼지어 네가 있는 하 늘나라에 갈 때까지 이 엄마 가슴에 잠들고 있는 너를 꼭 감싸안고 하늘나라에서 만날 때까지 네 영혼이 편히 잠들기를 기도하면서 안~녕 생일 축하한다.
HAPPY BIRTHDAY!
이정희 집사
한마음 48호 (1993년) 28페이지에 실렸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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