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쓰라린 선택

엄마의 쓰라린 선택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수없이 많다. 옳은 길이 어떤 쪽인지 알면서도 선택 후에 펼쳐질 삶을 생각하며 두렵고 떨려 망설일 때도 있고,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 몰라 방황할 때도 많다. 나부터도 선택의 기준은 나의 장래가 편안하고 질 좋은 삶이 무엇일지를 고민하며 선택을 해왔다.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야 27세 엄마가 선택의 갈림길에서 망설임 없이 당신의 길을 선택했던 그 속마음은 어떠했을까 또 외할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엄마의 삶의 갈림길에서 선택기준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자기희생이었다. 어릴 적 어느 날이었다. 외할머니께서 찾아오셨다. 외할머니께선 27세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어 시어머니와 어린 두 딸을 돌보아야 하는 딸의 고생을 보다 못해 온 가족 시골로 내려가자고 하셨다. 엄마는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그 당시 엄마 마음은 우리 두 딸은 물론이요, 무녀 독남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할머니 마음이 더 아플 것이라는 생각에 시어머니와 돌아가실 때까지 함께하시기로 하고 그렇게 지내오셨다. 주변에서 재혼 얘기도 많이 있었다. 안일한 삶을 위한 친구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나 하나 희생하면 온 가족이 평안할 수 있다고 하셨다.

또 엄마의 선택기준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었다. 아들 잃은 시어머니를, 아빠 잃은 우리 두 딸을 너무너무 사랑했기에 함께하는 것이 가장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했단다. 나도 그때 외할머니를 안 따라가신 게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철없는 척, 웃으며 엄마에게 박수를 보내곤 한다. 그러면 엄마는 너희 아버지가 엄마를 선택하신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되받아넘기신다. 당신 엄마를 잘 모실 수 있는 사람을 신부로 찾았는데 남편 없어도 잘 모실 수 있는 나를 택했으니 사람을 잘 보았다고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엄마를 보면 가끔 성경에 나오는 룻을 생각한다. 성경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의 며느리 룻은 남편도 죽고 자식도 없고 동서도 다 자기 친정으로 떠나가 아무런 희망 없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름으로 다윗, 예수의 조상이 되는 영광을 얻었다. 엄마에겐 우리 두 딸이 있어서 조금 나은 상황이지만 남편 없는 시어머니를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할머니께서 소천하시자 동네 사람들은 모두 할머니를 친정엄마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선택하며 살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다. 선한 선택을 했을 때 그것을 귀하게 보시고 그 선택을 존중해 주셨음을 느낀다. 세상 사람, 심지어 가족의 조언보다 사랑 때문에 자기희생을 기쁘게, 당당하게 망설임 없이 선택하며 사신 엄마의 삶에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보고 계시지 않으신 것 같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라는 말씀처럼 엄마는 어려웠던 시간, 외로웠던 시간 속에 온 가족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고, 이렇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셨다고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고백하신다.

나라면 엄마처럼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 외롭고 힘들 때마다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갈등하며 사셨을까? 우리 자매는 아빠 없이 자랐지만,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으로 애정결핍 없이 자랄 수 있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내 주어진 자리에서 내 한 몸 희생이 되더라도 사랑하는 내 가족을 위함이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본다. 요즘 들어 한 끼 금식하며 가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엄마만큼이야 흉내조차 낼 수 없지만,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이 작은 시간만이라도 내 가족들에게 나의 후손들에게 따뜻함으로 전해지고 싶다.

오늘은 창밖으로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이 엄마를 닮아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한남옥 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