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넉넉한 신혼부부

마음 넉넉한 신혼부부

요즘은 손자를 돌보느라 주 3일은 세탁소 대리점에 나가지 않고 아들네 집에 있다. 직원한테 전화가 왔다. 공장 드라이클리닝 기계에 누군가의 볼펜이 들어가서 잉크가 번져 몇 벌의 옷을 망쳤다고 한다. 세탁물은 받은 즉시 주머니 검색부터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공장에서도 이만저만한 걱정이 아니었다. 옷의 라벨을 보니 이태리 유명 상표 핸드메이드, 베이지색 정장 한 벌과 다른 손님의 바지 한 벌이 못쓰게 된 것이다. 정장 한 벌은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가격이 수천 불이었다.

2004년 워싱턴에서 어떤 사람이 분실한 바지 손해배상금을 5,400만 달러나 요구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이 생각났다. 세탁소를 하던 한인 부부가 바지 하나를 분실했다. 바지의 주인은 로이 피어슨이라는 판사였다. 그는 판사로 출근하는 첫날 입으려던 바지였는데 첫 출근을 망쳐버렸다고 고소했다. 일차 판결에서 세탁소 한인 부부가 승소했다. 피어슨 판사는 항소했다. 그러나 법원은 또 한인 부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3년 넘게 진행된 소송으로 한인 부부는 정신적으로 금전적으로 피해를 입고 세탁소를 그만두었고, 피어슨도 소송 건을 남용한 일로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그 외에도 걸핏하면 고소하는 이 나라 문화에서는 세탁 일로 엄청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이 뉴스로 가끔 나오곤 한다.

혹시 내게도 그런 일이? 이런 과대망상적인 상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랐다. 하나님이 가게의 주인이라고 말하면서 걱정하고 있는 내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손님의 마음을 너그럽게 만져주시고, 영어가 짧은 내 입술도 붙잡아 주시고 선하게 인도해 주시라고 기도했다. 기도하고 나니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다.

걱정했던 것보다 손님들은 좋은 분들이었다. 한 손님은 오랜 단골손님이다. 잉크 얼룩 있어도 아끼는 바지라 그냥 입겠다고 했다. 세탁비만 환불해 주었다. 비싼 베이지색 정장이 문제였다. 기도를 해놓고도 가슴을 조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직원이 처음에 전화로 말했을 때는 화가 많이 난 것 같다고 했다. 드디어 옷의 주인이 왔다. 신혼부부였다. 2주 전에 올린 결혼식 예복이었다고 한다. 본의 아니게 이런 실수를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손님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했다.

기도한 대로 그들의 마음은 너그러웠다. 이해한다고 하면서 “재킷은 감사하게도 겉에는 괜찮네, 안쪽에만 두 군데 잉크 자국이 있는데 그냥 입을 수 있겠네” 하였다. 바지는 정말 엉망이 되었는데

인터넷에서 바지만 구입하겠노라고 했다. 바지값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이 문제를 오래 끌고 싶지 않아 얼른 바지값을 체크로 써주었다.

안도의 숨을 쉬었다. “너희가 일부러 그러지 않은 것 안다. 이해한다”, “감사하게도 재킷은 괜찮다”라고 하는 젊은 부부의 말을 되뇌며 자기 권리만을 찾지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해 주고, 화난 마음의 온도를 내려 지혜롭게 말할 줄 아는 젊은이들이 참 귀하다고 생각했다. 2주 전에 결혼한 신혼부부라는데 결혼생활이 항상 행복하기를 축복하였다. 내가 손님이었더라면 그 비싼 옷을 망쳤는데 그래도 입을 수 있으니 감사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행여라도 내가 이런 손님의 입장이 된다면 이처럼 넉넉한 마음씨를 가진 신혼부부가 떠오를 것이다. 끝

한남옥 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