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을 품었던 흰머리 소녀들의 꿈

보물을 품었던 흰머리 소녀들의 꿈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어머니의 소지품을 정리하다가 ‘안나 장학회’라는 헌금 봉투에 삐뚤삐뚤 꾹꾹 눌러 쓰신 어머니 글씨로 “나의 보물!”이라고 쓰여 있었다. 안나? 아마 나이별로 묶어준 교회 안에 여 선교회인가 보다. 그런데 ‘나의 보물’이란 글은 무슨 의미일까? 고개를 갸웃하며 봉투를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 나중에 어머니를 모시고 교회에 출석하면서 알게 되었다.  안나 장학회는 지금은 작고하신 초대회장 김성갑 권사님을 비롯하여 교회 내 여 성도들이 주축으로 창단된 선교회가 아닌 장학회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이민 초기생활은 어머니의 병환과 미국 생활에 적응해 나가느라 동참할 여유나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는 신뢰하고 존경하는 분의 말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라 생각하고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순종하는 편이다. 평소에 존경하고 사랑하는 정정숙 권사님이 안나 장학회 회장직을 맡으면서 ‘안나 장학회’에 동참해 주길 권유하셨다. 토요일에 안나 장학회 월례회가 있고 웬만한 행사는 토요일에 진행된다. 토요일에 일을 하는 나의 직업상 동참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나는 “네”라고 대답하며 안나 장학회 회원이 되었다.

그 해에 오랜 병상 끝에 101세로 어머니는 소천하셨다. 소천하신 후 뒤늦게 안나 장학회 봉투에 ‘나의 보물’이란 글이 휴지통에서 내 가슴으로 다시 날아왔다. 생전에 어머니는 당신의 남편 아버님을 존경한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노환으로 기억에 장애가 생겼는데도 아버님께서 생전에 하신 일들을 자주 말씀해 주셨다. 교회를 세우고, 전쟁 후 어려운 환경의 차세대들을 교육하고 말씀 안에서 성장시키는 일, 크리스천 리더들이 되게 하기 위한 일에 힘쓰신 일 들이었다. 그런 아버님의 마음과 같은 의지로 일하는 안나 장학회이다.

나는 어머니의 안나 장학회 봉투에 쓰인 ‘나의 보물’이 차세대를 향한 마음임이 깨달아졌다. 그마음으로  장학 사역에 기쁨으로 동참하셨으리라’라고 이해했다. 남편은 어머니의 장례식 후, 소정의 남은 금액을 안나장학회에 무명으로 헌금을 하였다.(이렇게 지면으로 밝히니 무명이 유명이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이 며느리가 너무 부끄럽고 죄송했다.

안나 장학회를 시작한 이민 1세대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 세대들은 우리 민족의 일제 강점기, 6.25전쟁 등 아픈 역사를 몸으로 체험하였다. 그 아픔들을 가슴에 각인하고 살아오신 분들이다. 특별히 우리 교회는 이북에서 피난 온 분들이 많다. 그렇게 어려운 세월 속에서 신앙을 지키며 우리 민족 차세대들을 내 자식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잘 교육받고 훌륭한 믿음의 지도자들로 성장시키기 위해 장학회를 만든 것이다.

지금 6대 회장으로 섬기시는 박인숙 권사님께서 사진 한 뭉치를 들고 오셨다. 그동안 안나장학회가 하였던 일들의 기념사진이었다. 교회 홍보부에서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1983년에 창단하여 지금까지 활동하였으니 39년간의 일이다. 낯익은 어머니 친구분들이 행복하게 웃고 계신다. 저 멀리 연변 과학기술대학을 방문해 장학금을 전해주고 찍은 사진, 프린스턴 신학대학교, 플러신학교, 미주 장신대, LA 지역 대학생과 신학생의 장학사역, 두고 온 북한의 평화 통일을 염원하며 북한 선교사 양성 장학금, 북한 고아원에 후원, 한동대학교에 지원 등 정말 귀한 일들을 많이도 하셨다. 사진을 넘기다가 플러신학교 앞인 것 같다. 우리 어머니가 계신다. 중앙에 박희민 목사님 외 두 분 목사님과 옆에 노란 한복을 입고 자그맣고 예쁘장한 우리 어머님이 계셨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의 보물’이란 글씨가 내 가슴을 다시 한번 때렸다.

험한 세월 속에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일생을 헌신하셨던 우리 어머니들의 역사를 보았다. 차세대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나의 보물’이라고 생각하고 섬긴 우리 어머니들의 아름다운 정신을 배웠다. 아낌없이 나누며 헌신하며 안나 장학회를 이끌어온 역대 회장님들과 임원, 회원 모든 분들이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이 아름다운 섬김이 우리에 이어 자손 대대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안나 장학회 회원
한남옥 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