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한복이 품고 있던 사랑

구멍 난 한복이 품고 있던 사랑
나이가 자꾸 들어가도 아득한 옛 추억들이 간혹 영화처럼 생생히 기억되는 것들이 있다.
그런 추억은 인생에 소중한 길잡이가 되어 자신을 지탱케 해주는 힘이 되곤 한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이 힘들어져 가세가 급격히 힘들어졌다. 급기야 생활비가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엄마가 팔 걷고 나섰다.
엄마는 적극적인 분이셨다.
또 손재주가 좋으셔서 옷을 잘 지으셨다. 특히 한복을 잘 빚으셔서 많은 분들이 옷을 부탁하셨다.
본격적인 한복집 간판을 내걸고 비즈니스를 시작하셨다. 소문이 많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번 엄마가 아주 비싼 원단을 갖고 들어오셨다. 아마도 부잣집에서 주문을 받으신 것 같았다. 원단을 직접 건네받아서 오셨다고 했다.
엄마는 생활비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에 기뻐하시며 내게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 그간 고기 많이 못 먹었는데 내일 소고기 구워 먹을까?”
그다음 날 엄마는 소고기를 사다 놓으신 후 낮부터 그분의 옷을 작업하고 계셨다.
난 너무나 좋았고 얼른 먹고 싶어서 엄마에게 빨리 저녁 먹자고 졸라댔다.
엄마는 작업하던 것을 멈출 수 없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래도 나는 계속 졸라댔다.
엄마는 내 성화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작업하던 한복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저녁식사를 준비하셨다.
그땐 우리 집에 고기를 굽는 좋은 용기가 없었던 것 같았다. 엄마는 작은 화로에 숯불을 피워 석쇠를 올려 고기를 구우려 준비하셨다.
이때 상상도 못 했던 불상사가 일어났다.
화로 안의 숯들이 충분히 탄 다음 방으로 갖고 들어왔어야 했는데, 내가 하도 재촉하다 보니 엄마가 충분히 타지 않은 상태의 화로를 갖고 들어오신 것이다.
밥상 옆에 화로를 설치하고 고기를 올려놓으려 하는 순간 “따다닥, 퓽” 하더니 조그만 뻘건 숯 조각 두세 조각이 날아가 하필 엄마가 짓고 있던 한복 위에 떨어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그 비싼 재료가 구멍이 뻥 뚫리며 녹아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끝자락이 아니고 치마 한가운데 말이다.
순간 엄마를 보니 얼굴이 하얗게 됐다.
난 그 엄마의 얼굴을 보며 내 자신이 한없이 미웠고 엄마에게 너무너무 미안했다.
그렇게 안달복달 재촉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배고파도 조금 더 참고 있었어야 했는데…
“엄마…어떻게 해? 정말 미안해…”
엄마는 내게 “괜찮아, 엄마가 해결할게. 걱정 마!” 하며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난 너무 미안해서 고기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다. ‘엄마가 그 비싼 원단을 어떻게 물어내지..?’ 미안한 생각뿐이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면서 하나님께 용서의 기도를 드렸다. “예수님, 엄마를 힘들게 한 저를 용서해 주세요, 엄마에게 잘 해결될 길을 열어 주세요..!”
그다음 날 내가 등교할 때 엄마는 그 옷감들을 보자기에 담아서 나가셨다. 하교 후에 집에 왔더니 엄마가 환하게 나를 맞아 주시며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 어제 고기 제대로 못 먹었지? 오늘 엄마가 다시 구워줄 테니 다시 맛있게 먹어. 응?”
난 궁금해서 얼른 물었다. “엄마, 어떻게 됐어?”
엄마는 “으응, 그 댁에 찾아가서 사실대로 말씀드렸어. 그랬더니 그분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거니 신경 쓰지 말라며 원단을 다시 사다가 준다고 하시더구나. 참 고마운 분이더구나!
네가 늦둥이 아들이라는 것도 알고 계시더구나.
아들이 걱정 많이 해준 것 같아 고마워. 사랑해!!”
그때 난 안도하며 예수님께 감사했다.
이 상황을 평안하게 해결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
난 나이 들어서야 더 터득을 했다.
사랑은 이해해 주기를 시작함으로 유기적으로 얽히며 역사가 된다는 것을…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고, 그 사랑으로 무한한 새로운 창조가 일어난다는 것을 말이다.
내 엄마는 책임감이 강하신 분이셨다.
해야 할 일은 꼭 해야 하는 분이셨다.
내가 6살 때 기억도 난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걷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교회 유치부에 빠지지 않게 하시려고 날 업고 남산길을 돌아 1시간 반 넘게 걸어 교회로 데려가신 분이다.
생활고로 힘든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시며 꿋꿋하게 거짓 없이 직진하시던 어머니셨다.
그 어머니의 모습이 자식들을 만드셨다.
우리들은 각자의 어머니의 모습을 간직하고 또 새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 어머니는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의 선물이고 축복이며 역사이다. 내가 가지게 되는 나만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함과 신비함이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루하루의 삶이 절대 지겨울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시간들을 사랑으로 채워가게 이미 명하셨고, 우리들은 그 사랑의 가치가 얼마나 귀중한지를 십자가를 통해 알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또는 내 생각 속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이 대상은 사랑해 줘야 할 나의 책임과 의무가 부여된 사람이다. 허투루 그냥 쉽게 볼 대상이 절대 아닌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신부로 사랑하시는 이유는 그분의 정체성이 사랑덩어리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발광시킬 수 있는 사랑의 에너지를 이미 부여받은 소중한 존재들이다.
한해를 사랑으로 마무리하고, 새해는 더욱 사려 깊은 사랑 실천으로 우리 삶이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지는 나성영락인이 돼보자!
최두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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