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성탄절이 설레는 이유

아직도 성탄절이 설레는 이유

1부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1부 성가대원들이 본당 입구 계단으로 나와 “저 들 밖에 한밤중에”를 찬양한다. 그 찬양 소리가 이민 오기 전 1990년대 추억을 불러온다. 주일학교 부서별 준비한 귀여운 재롱으로 성탄 축하 예배를 드린 후에 밤 11시까지 다시 교회로 모였다. 성탄절 이브에 새벽 송을 하기 위해서이다. 자정이 되면 교회에서 출발해 동네 교인들 집들을 돌며 아기 예수 나심을 찬양한다. 많은 성도가 자지 않고 기다리다가 불을 켜 맞이하고 준비해 놓은 따끈한 차를 한 잔씩 마시기도 하고, 주일학교 어린이들이나 이웃에게 나눌 간식들을 건네 주기도 한다.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즐겁게 새벽 송을 했다.

그날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하얀 눈길을 교인들의 집들을 찾아서 걸어 다니며 새벽 송을 하다가 교인이 아닌 어느 집 앞에 일행을 멈추자고 했다. 평소에 몇 번 예수님 믿으시라고 권유했었지만, 그분은 강한 부인은 하지 않으면서도 교회는 오지 않으셨다. 그분의 집이 마음에 쓰였다. 나는 새벽 송 일원들에게 부탁해 우리 교인은 아니지만, 이 집에서 새벽 송을 부르고 가자고 부탁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 그분에게 우리를 위해, 당신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음을 알리고 싶어 마음을 다해 찬양하고 다른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동생이 중학교 시절인 것 같다. 동생이 아팠었는지 주일학교를 결석했다고 전도사님이 찾아왔다. 사춘기 이후 나는 말하기 어려운 이유로 교회를 다니지 않았지만, 교회에 가고 싶었다. 외롭고, 앞길이 보이지 않는 소망 없는 삶 속에서 누군가 내 손을 잡아 주었으면 했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알 리 없는 전도사님은 동생만 심방하고 그냥 갔다. 야속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나처럼 주위에 그렇게 목마른 사람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나는 예수님을 만난 후부터는 말주변 없지만 기회가 되는 대로 전도를 하려고 노력했다.

몇 년 전 한국에 갔다가 섬기던 교회를 들렀다. 오래 섬기던 교회라 교인들 대부분이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다. 반갑게들 인사하고 있는데 낯익은 듯한 한 분이 내게로 왔다. 당신을 기억하느냐고 묻는다. 나는 가물가물 기억이 나지 않아서 멋쩍어했다. 그분은 옛날에 내가 전도했던 얘기, 그분 집 앞에서 새벽 송을 할 때 깨어있으면서 교회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선뜻 나오지를 못했던 얘기, 등등을 들려주었다.

우리가 미국에 이민 온 후, 그분의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다. 가까운 친척도 없고 막막한 가운데 내가 전도하던 예수님이 생각났단다. 어느 해 성탄절 이브에 우리가 그분 집 앞에서 찬양할 때 예수님이 당신 집에도 오셨다고 생각했단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생각이 나서 교회에 전화했다고 하며 남편이 쓰러졌는데 도와 달라고 했단다. 감사하게도 교회에서는 달려가 도와주었고 남편도 병원 생활하는 동안 예수님을 영접하고 소천 하였고 그분은 지금 집사로 섬기고 있노라고 했다.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낮고 낮은 땅, 냄새나는 마구간으로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오셨다. 그 기쁜 소식을 먼저 들은 우리를 통하여 전하기를 원하신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주님께서 마음에 명령하시는 대로 복음의 씨 뿌려놓으면 키우고 거두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한다.

새벽 송을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예배 후에 나와 주님오심을 알리는 성가대의 찬양처럼, 나도 나의 형편대로 주님 오심을 알리려 한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를 잘 써놓은 전도지를 주문했다. 가게에 오는 손님들에게 한 장씩 주고 있다. 금번 성탄절도 예수님께는 기쁨을, 어둠 속 누군가에는 복음의 씨앗이 심어지는 기회가 되기를 기도하며, 설렘 가득한 성탄절을 준비한다.

한남옥 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