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찬송시를 만들어 보자 – 콘트라팍툼(Contrafactum)

나의 찬송시를 만들어 보자 – 콘트라팍툼(Contrafactum)

콘트라팍툼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요.

콘트라팍툼(Contrafactum)은 라틴어 콘트라파체레(Contrafacere: 모방하다) 에서 파생된 말로서 종교적인 사용을 위해 세속음악 선율을 차용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글에서 콘트라팍툼을 음악사적으로서나 음악 분석으로 접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께서 말씀하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 (에베소서 5:18-20) 그리고 시편에 기록된 “새 노래” (시편 40:1-3)의 의미로서 보고자 합니다. 공적인 예배와 성도 개인이 말씀과 기도 그리고 찬송을 할 때에, 찬송이 하나님께로 올려드리는 것뿐 아니라 성도들의 마음에 더 큰 감동으로 다가가서 그 은혜와 감사의 찬송이 우리들 삶의 지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전개하려고 합니다.

매해 10월 마지막 주일은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이 종교개혁은 16세기 로마 교황권의 문제를 야기한 독일의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에 의해 1517년 종교 개혁이 발발하여 프로테스탄트 교회 – 개신교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당시 카톨릭 예배는 라틴어 미사로서 예배와 예배 음악은 성직자와 성가대의 전유물로 회중들은 예배에서 도외시되었습니다. 루터는 예배에 있어서 회중이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것을 주장하며 코랄 (Chorale)이라는 회중 찬송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초기 코랄 음악가들은 서민층을 위해 독일어 가사로 찬송을 하여 새로운 작사와 작곡을 하기도 하였지만, 기존의 익히 알고  따라 하기 쉬운 세속 민요 곡조에 종교적 가사를 넣어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콘트라팍툼입니다. 예배는 변화했지만 변변치 않았던 예배 찬송을 이 시기에는 노래의 곡조를 “세속적인 것 (Secular) 과 종교적인 것 ( Sacred)”으로 구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1529년 루터는 시편 46편 1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라는 말씀에서 영감을 얻어 “내주는 강한 성이요”를 작사 작곡하였습니다.

프랑스 출신의 또 한 명의 종교 개혁자인 죤 칼빈 (John Calvin, 1509-1564)은 예배에서 음악의 사용을 더욱 엄격히 적용하였습니다. 음악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어 오히려 그 음악의 오용을 미리 금지하여 “시편가”의 찬송만을 추구하였습니다. 가사가 없는 악기는 신앙고백이 될 수 없다고 하여 성악곡만을 사용하였을 정도였습니다. 찬송의 곡조가 화려함이 가사의 의미를 반감시킬 수 있다고 하여 단순한 단선율만으로 프랑스어로 시편을 번역하였고 이미 알려진 멜로디를 사용하여 찬송가를 보급하였습니다. 물론 후에는 음악가들에 의해 편곡과 작곡을 하였습니다. 두 종교 개혁자들의 교회음악은 특정 찬양대만이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회중 모두가 비종교적인 세속 음악의 멜로디를 사용하더라도 그 목적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찬송으로 말미암아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에 이런 콘트라팍툼 찬송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지요? 제일 대표적인 찬송이 “기뻐하며 경배하세”입니다. 이 찬송은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작품 중 9번 교향곡의 4악장에 나오는 멜로디입니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남궁억 선생님께서 일제 치하 속에서 민족을 계몽하고 희망을 주기 위하여 작사하신 찬송가입니다. 이 곡은 1835년 도니제티( Gaetano Donizetti, 1797-1848)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 Lucia di Lammermoor )”에 나오는 합창음악입니다. 오페라에 나오는 이 노래를 감상해보겠습니다.

그 시대에 이 노래에 한국인만의 가사를 만드셨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시온성과 같은 교회” 는 독일 국가에서 그리고 “피난처 있으니” 는 영국 국가의 멜로디에 종교적 가사를 붙인 찬송가입니다. 이 두 나라 사람들이 우리 예배 시에 이 찬송가를 부르는 것을 보면 좀 이상하게 생각하겠죠?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는 스웨덴의 민요에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와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는 영국의 민요에서 멜로디를 차용한 찬송가입니다. 그 밖의 찬송가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민요 “아리랑”이 미국 찬송가에 실려 있는 것도 아시죠? 번역된 가사를 1절만 알려드리니 노래해 보세요.

Christ, You are the Fulness

예수님은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시니

말씀으로 세상 만물을 창조하셨네

주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니

죽음 권세 이기신 우리 구세주

 

이제 콘트라팍툼으로 된 찬송시를 아셨으니 우리도 나만의 찬송시를 만들어 볼까요? 저의 어머니께서는 예전에 성경모임을 하시면서 가사를 바꾸어서 찬송하셨습니다. 가사의 내용은 기억은 안 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찬송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기억합니다. 우리 영락교회에 지금도 시인으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감히 그분들과 같은 수준은 될 수 없지만 그리고 음악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굳이 만들 필요가 없지만, 주님께 받은 은혜와 감사, 고통 중에 만난 하나님, 몸이 아파 가슴속에서 울부짖는 기도,… 우리의 생활에서 하나님과 나누는 이야기를 글로써 표현하면 더 깊은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작년에 성경말씀을 써 내려가면서 저와 같이 공감을 하셨을 줄 압니다. 또박또박 한 자 한 자 신경 쓰며 써 내려가는 말씀 가운데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보고 쓰면서,  마음으로 감격하는 기쁨과 평안함이 외부에서 불어닥친 Covid19의 두려움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주신 것이죠.

찬송가를 보시면 제목 아래로 왼쪽에는 작시하신 분의 이름이 있고 오른쪽에는 작곡하신 분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숫자가 있습니다. 그것이 운율입니다. 7.7.7.7. 이렇게요. 여기에 맞춰 시를 적어보세요. 리듬이 달라질 수도 있겠죠. 걱정하지 마세요. 달라지는 대로 찬송하시면 됩니다. 제가 한 번 해 보겠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아는 찬송인 “예수 사람하심은”으로 해보겠습니다.

예수 사랑 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 있네

십자가의 사랑이 나를 구속 하셨네

그 큰 은혜 감사해 주께 찬송합니다

하나님 사랑 예수님 순종

내 안의 성령 참 감사합니다

어떠세요?

여러분들도 한 번 해보세요. 기도도 중언부언하지 말라 하셨잖아요. 머리속에서 맴돌고 있는 것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 가면서요 누가 알지 못하잖아요.

“내가 여호와를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새 노래로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시 40:1-3) 즉 새 노래는 체험을 하고 난 후에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노래한 것입니다.

“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에베소서 5:19-20) 이 말씀은 너무나 율법적이었던 바울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회심 후 성령이 중심이 되어 신령한 노래 , 즉 성령에 충만함으로 주께 받은 은혜와 믿음을 우리의 체험된 생활 속에서 솟구쳐 나오는 감사 찬송을 하라고 하신 그 뜻을 다시금 새겨봅니다. 이 신령한 노래는 인스턴트처럼 단시간에 끓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새겨진 말씀의 진리가 나를 옥죄는 것이 아니라 자유하며 성령과 동행함으로 마음에 가득 찬 감격의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시대를 걸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방법은 각 시대의 문화와 사회현상에 의해 수정되고 변화하는데, 거기에 중심 사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음악의 동기와 목적에 따라서 사회와 사람들의 객관적인 인식이 허용되면 세상의 음악을 교회 음악화했었습니다. 현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넘쳐나는 음악들 속에서 콘트라팍툼은 어찌 보면 위험한 요소들이 많을 수 있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의 신학적 사상 중에서 이야기한 “Sola Scripture – 오직 성경” 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이 말씀 안에서 뜻을 이해하며 찬송시를 만드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께 참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음악의 단순한 미적 경험을 위해 의식 없는 세속음악의 차용이라는 것은  교회음악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세상음악을 하는 사람들보다 우리에게는 세상음악과 교회음악을 모두 할 수 있는 큰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이제 그 선택의 몫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생각을 정리하시고 조용히 묵상해 보세요. 하루의 일과를 시작할 때 아니면 일과를 끝내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저녁 바람을 느끼며, 호롯이 앉으셔서 종이를 꺼내어 연필을 잡고 나만의 찬송시를 만들어 보세요. 깜짝 놀라실수 있어요.

1부 찬양대 지휘자 김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