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얼굴의 비밀

빛나는 얼굴의 비밀

나 어렸을 때 일이다. 엄마가 넘어지셨다. 그날 가게에서 간식거리로 팔 손질한 감자가 담긴 함지를 머리에 이고 비탈길을 내려가시다 넘어지셨다. 양은 함지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엎어졌고 감자는 사방에 뒹굴고, 눈앞에 불이 번쩍 보이며 엄마는 그대로 하나님이 데려가시는 줄 알았단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당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소리가 “지금은 안 돼요~!” 넘어지면서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넘어진 곳 앞 집안에서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남편과 사별하여 외롭고 힘든 삶을 살지만 우리 두 딸이 너무나 소중해 지금은 하나님 날 데려가시면 안 된다는 외침이었다. 종종 엄마의 그때 그 마음을 떠올리며 엄마의 사랑의 희생으로 길러진 나는 엄마에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성년이 되어 세상일이 내 욕심대로 되지 않아서 위장병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다. 직장도 못 가고 집에 누워 있었다. 비교의식으로 열등감과 자괴감이 가득해 있던 내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다.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심을 알게 하셨다. 나는 하나님을 떠나 있었어도 당신은 내 곁에서 위험한 순간순간 지켜주셨음을 보여주시며 사랑하는 하나님의 딸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전능자,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셨다. 나는 예수님의 보혈의 값으로 얻은 하나님의 소중한 딸이다.

중학교 시절 나는 동네 한 예식장 사장님의 배려로 열렸던 야학(청소년 교육관)에서 공부를 했다. 그 사장님이 관장이었다. 의자는 예식장 의자라 학교에 있는 나무의자보다 멋지고 편안한 의자였다. 그러나 책상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 합판으로 사용했다. 대학생들이 선생님으로 봉사를 해 주셨다. 어려운 시대에 대학생 선생님들 중에는 자신의 학비를 벌려고 따로 일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자신들의 공부를 하면서 우리를 가르치는 일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피곤한 기색은커녕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학생도 교사도 낮에는 일하고 밤에 학교를 오는지라 피곤할 텐데 모두가 행복한 얼굴로 꿈을 키우고 사랑을 배우며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며칠 전 신문에 아이티에 강도 7.2의 지진과 태풍과 폭우로 거의 폐허가 된 기사와 사진을 보았다. 또 긴급한 구호 요청이 필요하다는 월드 셰어 USA의 광고도 보았다. 알아보니 극빈자 마을에 세워진 학교가 어려움을 당한다고 했다. 몇 년 전 큰 지진으로 어려움을 당한 나라에 왜 이렇게 무서운 천재지변이 겹치는 걸까? 너무나 안타까웠다. 위험한 그곳에서 봉사하는 분들과 어려움을 당한 현지인들, 특히 어려운 여건에서 꿈을 키우며 공부하는 어린아이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어릴 적 공부하던 야학교와 오버랩되었다.

음식 쓰레기가 나올 때마다 북한이나 아이티 그 외에 어려운 나라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눈에 어른거린다. 종종 먹을게 넘쳐나는 풍요로운 미국에 살면서 죄스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 하나님께는 미국에 있는 우리나 아이티에서 어려움에 처해있는 저들이나 동일한 당신의 자녀일 것이다. 또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딸일 것이다. 결국 우리의 형제자매인 것이다. 저들은 하나님의 아픈 손가락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현재 세탁소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팬더믹으로 처음에는 손님이 거의 오지 않아 당황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세탁해서 재사용할 수 있는 천 마스크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인기가 있었고 어려운 시간들을 잘 넘길 수 있었다. 코로나가 잡혀가는가 싶더니 다시 변이 바이러스로 마스크를 찾는다. 가게 매상도 어느 정도 회복되어가기에 일주일간 마스크 파는 금액을 따로 모아 긴급 구호자금에 참으로 적은 금액이지만 보태보기로 했다. 남편은 패턴대로 재단을 해주고 뒤집고 포장해 주는 등 보조를 맞춰주고 나는 재봉을 한다. 일하면서 나는 희죽희죽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야학에서 대학생 선생님들의 얼굴들이 빛났던 비밀을 알 것 같다.

한남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