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은 내려놓고 자존감을 찾으세요

자존심과 자존감 비슷한 말 같지만, 자존심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굽히지 않고 자기를 스스로 높이는 마음이라고 하고, 자존감은 자아존중감이라는 말로서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스스로 자기를 소중히 대하며 품위를 지키려는 감정이다.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할 수 있다. 하나님 안에서 자존감을 회복하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임을 확신하며 경험하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살다 보면 자존심 따윈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어려운 문제나 상황을 직면할 때가 있다. 자존심을 버리고 하나님께 나아가 은혜를 입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흥미로운 성경 이야기가 있다.
나아만 장군 이야기이다. 성경에 나오는 나아만 장군은 (왕하5:1~14) 이스라엘보다 강한 아람 나라에 용맹한 장군이다. 그에게는 권력, 재물, 명예 세상 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 나아만이 위기를 만난다. 한센병 (문둥병)이라는 병에 걸리게 된 것이다. 그 당시 한센병은 못 고칠 질병이어서 천벌이라고 생각하고 사회나 가정에서 격리되어야만 했다. 얼마나 절박한 심정이었을까? 그의 인생이 끝장날 것 같은 위기를 만난 것이다.
우습게 생각했던 이스라엘에서 데리고 온 계집아이, 아내의 하녀를 통하여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야를 만나면 치유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여기서부터 나아만은 자존심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하찮은 노예의 말대로 자기가 침략한 약소국에 찾아가 자기 병을 보이며 낫게 해달라고 부탁한다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나라 아람 왕에게 자기 병을 사실대로 얘기하고 치료받으러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얘기해야 한다. 이렇게 허락을 받아 왕의 추천서를 가지고 이스라엘에 가지만 이스라엘 아합왕은 고칠 수 없다고 거절하자 또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선지자 엘리사를 만나러 갔지만 그를 만나주지도 않은 채 하인을 보내 요단강 물에 일곱 번 담그라는 명령을 한다. 강대국의 장군을 나와 보지도 않고 하인을 시켜 지시를 내리는 예상치 못한 대접에 마음이 많이 상하게 된다. 죽여 왔던 자존심이 살아나려 했다. 화가 났다.
부하들의 설득으로 다시 한 번 자존심을 내려놓는다. 그의 옷을 훌훌 벗는다. 자신의 부하들 앞에서 썩어 가는 피부를 드러내며 속옷까지 훌훌 다 벗는다.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는 순종을 통하여 피부가 깨끗하게 회복되는 놀라운 일을 체험한다. 몸만 치유 받은 것이 아니라 이방 나라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불치병을 치유 받고 그 능력의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체험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과 자존감을 얻게 된 것이다.
나에게도 이러한 체험이 있다. 이민 초기에 남편은 실직하고 작은아들은 아프고 살아갈 길이 막막할 때가 있었다. 이민 와서 사는 다른 친척들은 다 잘 된 것 같았는데 나만 마치 저주를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성경에 딸이 귀신들려 예수님께 치료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가나안 여인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다”는 말씀을 하시며 거절한다. 개일지라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구하는 그 여인의 심정이 되어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한 적이 있다. 그때 주님은 사랑하는 내 딸이라는 분명한 말씀을 주셨다. 위기를 통해서 자존심을 내려놓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나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얻게 되었다.
연약한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직면하여 해결하기보다는 현실의 고통을 직면하지 못하도록 우리 안에 합리화, 퇴행, 반동형성, 부정 등의 방어기제를 만들어 거짓자아로 살아가곤 한다. 남의 눈을 의식하여 헛된 자존심으로 살지 말자. 아픈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훌훌 벗자. 하나님의 요단강물에 나를 그대로 담가 보자.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자.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란다”.
한 남옥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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