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두 글자?

‘사랑’이란 두 글자?

이것은 30여 년 전쯤 들은 얘기를 여러분들께 전해주는 것이므로 몇 다리를 거친 것이기는 하지만, 듣고 또 들어도 여전히 감동이 되는 스토리다. 라디오 성경상담 프로그램 ‘바이블 앤서맨’의 진행자이며 기독교 변증학자인 ‘행크 해너그래프’가 전도폭발 창시자, ‘제임스 케네디’ 목사에게서 들은 얘기를 자신의 저서, ‘위기 속의 미국 기독교’에 인용한 것이다.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상기시켜 준다.

미국 역사의 어두웠던 시기, 1929년의경제 대공항 시절이었다. 20대의 청년, ‘쟌 그리피스'(John Griffith) 역시 극심한 생활고로 청운의 꿈을 접고 고향을 떠나 미시시피 강가로 이주하게 되었다. 거기서 부산 영도다리처럼 배가 지나갈 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철교를 조종하는 직업을 얻게 되었다. 그가 하는 일은 기차가 지나갈 때 철교를 내려주고, 배가 지나갈 때는 철교를 올려주는 것이었다.

다시 직장을 갖게 되고 사랑하는 8세 아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되찾았다. 하루는 아들과 함께 철교 옆 잔디밭에서 점심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 때 기적 소리가 울렸다. ‘멤피스 급행열차!’ 아들과의 즐거운 식사에 기차 통과 스케줄을 깜빡했던 것이다. 아들에게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라는 당부와 함께 숨차게 기계실로 뛰어갔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훈련받은 대로 안전수칙을 점검한 후 다리를 내리기 위해 스위치를 누르려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어쩌면 이런 일도 다 있단 말인가? 다리의 조종실 창문에서 내려다 보니 다리를 움직이게 하는 거대한 톱니바퀴 위에 아들이 피를 흘리며 기절해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했건만 아들이 아빠를 따라 뛰어오다가 미끄러지며 톱니바퀴 위에 떨어진 것이었다. 급행열차는 전속력으로 다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뛰어 내려가 아들을 구출해낼까를 생각해 봤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당장에 다리를 내리지 않으면 수백 명의 기차 승객들이 죽고, 다리를 내리면 아들이 죽어야 한다. 스위치를 누르냐, 마느냐? 한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스위치를 눌렀다. 잠시 후 기차가 쟌 그리피스의 눈앞을 통과해 지나갔다. 기차 안에서는 한 소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한편에서 부인들이 모여앉아 무슨 얘기인지 함박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기차 승객들은 그들을 살리려고 쟌 그리피스가 자신의 외아들을 희생시켰다는 슬픈 사실조차 몰랐던 것이다.

비록 사고이기는 했지만, 이 아버지는 남들을 살리기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경우에는 사고가 아니었다. 당신께서 창조하신 인간들의 손에 의해 당신의 외아들이 처참하게 살해당할 것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이 땅에 보내셨다. 성자 하나님, 예수님도 주저하지 않고 자원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제물로 바치려 신께서 사람의 옷을 입고 세상을 찾아오셨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신인(神人), 또는 θεάνθρωπος(쎄안쓰로포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100% 신이시면서도 100% 인간의 몸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신께서 세상을 방문한다는 것 자체도 기절할 만큼 놀랄 일이지만 방문 목적은 더 기절할 일이었다. 우주를 창조하신 신께서 십자가에 올라가려고 지구를 방문하신 것이다. 그것도 인류가 고안해낸 형벌 중 가장 끔찍하고, 가장 고통스럽다는 무서운 형벌, 십자가형을 받으러 오신 것이다.

왜? 무엇 때문에? 그것이 패티김의 노래, “사랑이란 두 글자”와 유사한 이유 때문이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인류가 죄의 문제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는 것에 대해 십자가 외에는 절대적으로 해결책이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셨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올라가실 목적으로 세상을 찾아오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란 결국 이 한마디로 정리된다. “사랑이란 두 글자!” 바로 그것이 크리스마스 날에 지구를 방문하셨던 삼위일체의 하나님, 예수님의 지구 방문의 이유였다.

강원경 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