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 담아 보는 꿈

비행기에 담아 보는 꿈

지금은 소천하신 시부모님께서는 한국전쟁 때 이북에서 피난을 오셨다. 피난 오실 때 할머니가 아프셨는데 큰딸이 할머니와 함께 있겠다고 하면서 다녀오라고 했단다. 그날이 영영 이별의 날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 딸을 못 잊고 날마다 기도하셨다. 혹시 미국에 시민권자가 되면 만날 수 있을까 하셔서 미국으로 이민 오셨다고 한다. 그러나 그 꿈은 이루지 못하시고 천국으로 먼저 가셨다.

휴가 중에 Chino, CA.에 있는 비행기 박물관(Planes of Fame Air Museum)을 방문했다. 안내원이 한국 전쟁 때 쓴 비행기도 전시해 있다면서 가이드가 필요하면 함께해 주겠다고 하였다. 호기심 많고 부산스러운 20개월 된 손자를 챙겨야 하기에 가이드의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기 박물관이다. 100대 이상의 다양한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에는 라이트 형제가 세계 최초로 동력 비행한 라이트 플라이어를 비롯해 제트기, 전투기, 민항기, 헬리콥터, 1969년 달 탐사를 하고 온 아폴로 12호 우주선의 핵심 부분인 아폴로 컨트롤 모듈까지 전시되어 있다.

아직 어린 손자에게는 이렇게 큰 박물관을 견학하기에는 지루하고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통통통 뛰어다니며 우와!를 연발하며 좋아하였다. 장난감으로만 만지며 놀고, 높은 하늘에 가는 비행기를 손짓하며 보았던 것들을 실제로 가까이서 보니 신기하였나 보다.

한국전쟁 기념관이 있다. 이곳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그때 사용한 비행기와 함께 역사와 참전 용사들의 이야기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국학교 어린이들과도 견학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쳐들어왔다. 3년에 걸친 전쟁은 결국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체결로 끝이 나면서 한국은 남한과 북한으로 두 동강이 나고 생이별한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가.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며 참혹한 전쟁이었다.

그 전쟁 속에 한국과 아무 상관없는 미국과 유엔의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 그때 참전한 미군과 유엔군의 평균 연령은 21세로 17세 어린 군인도 있었다고 한다. 스무 살 건장하게 잘 자란 아들들을 남의 나라 전쟁터에 보낸 그들의 부모님들 마음은 어땠을까? 가슴 조이며 건강하게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아들들의 전사 소식을 들은 마음은 어땠을까? 한나라의 평화를 위해 희생된 우리 조국의 역사를 생각하며 마음이 숙연해졌다.

동족상잔의 6.25 전쟁은 결국 남과 북이 나뉘고 남한만이 평화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참담했던 한국전쟁이 끝난 몇 년 뒤에 태어난 나는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 과정을 체험하며 살아왔다. 외국의 지원도 있었지만, 온 국민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빠르게 성장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한국은 현재 한류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고, 경제 수준도 세계 10위권에 속한다. 이렇게 발전한 속의 조국의 젊은이들,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한인 디아스포라의 하나인 우리들, 우리 자손들이 한국전쟁에서 많은 희생과 아픔을 통해 얻어진 평화의 소중함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의 조국이 속히 평화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손자의 시대에는 하늘과 땅의 길이 열려서 지금 통통통 뛰어다니며 신기해하는 손자가 증조할아버지 할머니 고향에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어린 녀석이 증조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아픈 맘을 기억하기를 바래본다.

한 남옥 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