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의 수요강해 삼상06 – 하나님의 언약궤와 블레셋의 환란

CHECK POINTS
-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블레셋 민족은 언약궤를 어떻게 대하였습니까?
- 하나님의 재앙은 왜 블레셋의 우상과 민족에게 임하게 되었습니까?
- 주님의 경고와 심판을 느꼈을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우리는 앞서 이스라엘 백성이 블레셋을 물리치기 위해 언약궤를 가지고 참전하였으나, 패배하여 언약궤를 빼앗기고, 사무엘의 예언대로 엘리 가문이 몰락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언약궤를 탈취한 블레셋 민족과 그들의 우상을 파하시는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의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블레셋 우상, 다곤(Dagon)을 깨버리시는 하나님 (1~5절)
고대 근동 사람들은 다른 민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자신의 신이 상대 신보다 강해서 승리했다!’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민족은 승리 후 전리품으로 얻은 언약궤를 자신들의 신 다곤에게 헌상하고, 신당 바닥에 두어 다곤의 능력을 찬양하려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언약궤를 뛰어 넘으시는 것이나,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향하여, 언약궤를 통해 강력한 능력을 보여주시고, 동시에 그들 우상의 무력함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다음날 신상을 언약궤 앞에 엎어지게 하여, 항복하는 자세를 취하게 만드셨지만 “블레셋인”은 여전히 이를 깨닫지 못하고, “문지방 신앙”에 머물며 우상을 일으킵니다. 다음날 하나님께서는 아예 완전히 신상을 깨뜨려 버리십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지고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서 다곤 곁에 두었더니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그들이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그 이튿날 아침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또다시 엎드러져 얼굴이 땅에 닿았고 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았더라 (삼상 5:1~3)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지극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들보다 경외할 것임이여 만국의 모든 신들은 우상들이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존귀와 위엄이 그의 앞에 있으며 능력과 아름다움이 그의 성소에 있도다 만국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시 96:4~7)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하나님과 그분의 이름을 악용하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결코 사람의 유익과 목적을 위해서 사용될 수 없으며, 그분의 능력은 우리의 어떤 “우상”에 의해서도 만홀히 여김을 받을 수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 오직 여호와 하나님 만이 주(主), 우리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 하나님의 말씀을 곁에 머물며,
- 삶의 모든 부분에서 주님께 영광 돌리길 원하십니다.
블레셋 민족을 엄중히 심판하시는 하나님 (6~12절)
- 첫째,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의 다곤을 깨버리시고,
- 둘째, 이어서 사람들을 심판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블레셋 주요 성읍에 더하셔서 “독종”(毒腫) 재앙을 내리십니다.
이 “악성 종기”(히, 쉐힌)는 “불에 탄다” “’끓는다”라는 뜻으로, 고열과 소양, 고름과 썩음 증세로 사람을 사망까지 이르게 만드는 무서운 피부병이었습니다. 이 재앙은 출애굽시 애굽에 내린 6번째 재앙과 동일한 것으로(출9:9) 이전에 재앙들(피, 개구리, 이, 파리, 악질)보다 더욱 적극적인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한 종기의 재앙으로 아스돗과 그 지역을 쳐서망하게 하니 (삼상 5:6)
죽지 아니한 사람들은 독한 종기로 치심을 당해 성읍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더라 (삼상 5:12)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신 5:9,10)
말씀에 “망하게 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샤맘”(םמשׁ(은 “황폐하게 되다. 소스라치게 놀라다”의 뜻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연관되어 쓰였는데, 즉, 언약궤를 “재물” “물질적 이득” 정도로 가벼이 여겨 조롱거리로 삼은 이들을 “놀라서 굳어질 만큼 황폐하게 만드신다”는 의미입니다.그렇게 하나님을 무시하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이 중하여서 그들의 “부르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
블레셋의 아스돗(6,7절) 지방에 하나님의 궤가 있을 때 그곳에 심각한 재앙이 임하자 블레셋인들은 언약궤를 가드성읍(8,9절)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에 더 큰 재앙이 임하자 이번에는 언약궤를 에그론(10-12절)으로 옮겼지만 그곳에서도 더 큰 환란을 겪게 됩니다.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이 있을 때 블레셋인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부정하는 “불신앙의 죄”라는 근원적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려기보다 그저 가시적인 현실을 바꾸어서 찾아온 환란을 모면하려고 하였습니다. 블레셋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과 실제 보이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교만함을 상징합니다. 임박한 문제를 그때 그때마다 피하고 보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에 사람을 보내어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이르되 우리가 이스라엘 신의 궤를 어찌하랴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가드로 옮겨 가라 하므로 이스라엘 신의 궤를 옮겨 갔더니 그것을 옮겨 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읍에 더하사 성읍 사람들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한 종기가 나게 하신지라 (삼상 5:8,9)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롬 2: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 17:45)
우리는,
-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외하여 겸손해야 하며,
- 하나님에 대한 지속적인 경험으로 그분을 인정해야 하고,
- 지난날의 죄와 과실은 덮어두지 않고 회개하여,
이 땅에 “블레셋인”이 아닌,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지 못하는 불신앙과 끝까지 죄를 회개하지 않는 완악함을 버리고, 다시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악한 원수 마귀를 물리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다시 경험케 될 것입니다.
사진: “아스돗에 임한 역병 (The Plague at Ashdod)”. 신고전파 니콜라스 푸생 (Nicolas Poussin). 1631 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