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찾아 너의 숲으로

달빛 찾아 너의 숲으로

호랑나비와 씨름한 하루이다. 오후 느지막이 가게에 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재봉틀 바로 위 형광등에서 계속하여 맴돌다가 앉다가를 반복하며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게의 앞문 뒷문을 활짝 열어놓았으니 때가 되면 자기 갈 길을 찾아가겠지 싶어 한참을 그대로 두었다. 여전히 형광등에서 떠날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불나방처럼 너 타 죽겠다, 이제 그만 나가렴” 나는 종이 하나를 집어 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부채질을 하였다. 위험을 느꼈는지 형광등에서 더 파닥거리며 빙빙 돌 뿐이었다.

퇴근 시간이 되었다. 불을 끄자 그제야 나비가 등에서 내려온다. “아, 왜 진작 불 끌 생각을 못 했지?” 지혜 없는 나의 머리에 꿀밤을 주며 자책했다. 등에서 내려온 나비는 바닥에 내려앉더니 방향을 잃고 더듬거렸다. 남편이 살살 유도해 문밖으로 보내주었다.

나비는 왜 불빛을 발견하면 죽을지 모르고 날아드는지 궁금했다. 인터넷 ‘나무위키’에서 찾아보았다. 생물이 빛에 반응하는 현상을 ‘광주성’ 혹은 ‘추광성’이라고 한다. 나방, 장수풍뎅이, 매미, 오징어, 고등어 등과 같이 빛을 향하는 동물들은 양성  주광성을 갖고 있다고 하고, 바퀴벌레처럼 빛을 피하는 생물을 음성 주광성을 가진 동물이라고 한다.

호랑나비는 빛을 향해 들어온 양성 주광성을 가진 동물이다. 이들은 본능 행동으로 어둠 속에서 달빛을 나침반으로 기준 삼는다.  밤하늘에 달빛을 향하여 고상하게 부유하여야 할 나비가 이 좁은 가게 형광등 불빛에 현혹되어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하마터면 그 형광등 불빛 아래 죽을 뻔하지 않았는가?

핸드폰에서 나비의 습성을 조사하던 나도 형광등 불빛 아래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는 나비와 같다. 핸드폰 속 이길 저길에 빠져 헤매는 시간이 종종 있다. 특히 비디오 공유 웹사이트에서 짧은 형태의 영상에 빠져 이것저것 보다가 시간을 허비했다는 공허감에 씁쓸한 적이 많다.  창조주는 높고 밝은 달빛 아래  당신을 찬양하며 춤추며 삶을 누리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핸드폰, 컴퓨터의 미디어 불빛에 현혹되어 갈 길을 잃고 빙빙 돌며 헤매곤 한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식구들의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나의 뇌는 점점 비워져 가고 있다. 달빛 아닌 형광등에 빠진 불나방처럼 미디어에 빠져 내영이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다양한 미디어들은 삶의 편리를 위한 도구일 뿐이지 내가 맴돌아야 할 나침반은 아니다. 내 삶의 나침반 되시며 내 속에 계신 빛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그 빛이 나를 통해 흘러나와 이웃을 살리는 작은 빛으로 살아가면 좋겠다.

호랑나비야, 달빛을 보고 훨훨 너의 숲으로 날아가렴.  달빛 아래 짝짓기 월츠도 즐기고 아기도 낳고 아름다운 세상 만들어 가렴.

 

한남옥 권사